삐삐에 이어 무전기도 '쾅'…레바논 폭발물 누가 만들었나

현지 시간으로 17~18일 이틀 간 레바논에서 무선호출기(삐삐)와 휴대용 무전기(워키토키)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엑스 갈무리
현지 시간으로 17~18일 이틀 간 레바논에서 무선호출기(삐삐)와 휴대용 무전기(워키토키)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엑스 갈무리

레바논에서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통신수단으로 쓰는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가 이틀째 대량으로 폭발하면서 수천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 폭발하는 무선장치를 두고 배후에 누가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8일(현지 시각) 미국 N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후 3시 30분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교외 이스라엘 접경지인 남부, 동부 베카벨리 등 헤즈볼라 거점을 중심으로 삐삐 수천 대가 동시다발로 터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어린이 2명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했으며, 약 28000명이 부상당했다. 접경국 시리아에서도 삐삐 폭발로 헤즈볼라 대원 등 14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레바논 보건부는 모든 시민에게 소지한 삐삐를 즉각 폐기하라고 요청했지만 이튿날에는 삐삐뿐만 아니라 휴대용 무전기(워키토키)까지 연쇄 폭발하면서 사상자는 더욱 늘어났다.

18일 레바논 동부 베카밸리와 베이루트 외곽 다히예 등지에서 발생한 무전기 폭발 사고로 최소 20명이 숨지고 450명이 다쳤다. 전날 숨진 11세 소년과 헤즈볼라 대원의 장례식 행사가 진행되기 직전에도 폭발 사고가 보고됐다.

이틀 연속 휴대용 기기에서 폭발 사고가 보고되자 레바논은 자국민들에게 휴대전화, 카메라 등을 모두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특히 부상자들 상당수가 눈 또는 손을 잃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아스 워락 박사는 영국 BBC 방송에 “진찰한 사람 중 60%가 적어도 한쪽 눈을 잃었고, 많은 사람이 손가락이나 손 전체를 잃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폭발한 삐삐와 무전기는 모두 5개월 전 헤즈볼라가 구입한 것으로, 대만 업체 골드아폴로가 제조한 것과 동일한 제품으로 확인됐다. 호출기 뒷면에는 골드 아폴로의 스티커도 붙어있었따.

하지만 골드아폴로는 제조를 완강히 부인했다. 쉬 칭광 골드아폴로 창립자 겸 사장은 “해당 모델은 AR-924로 우리가 생산한 것이 아닌 헝가리 업체 BAC 컨설팅이 라이선스를 가지고 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BAC 컨설팅이 유령회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외신 기자들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BAC 컨설팅 주소를 방문했지만 건물은 비어 있었고, 건물 관계자 역시 회사가 해당 주소에 물리적으로 상주한 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웹사이트도 폐쇄된 상태다.

또한 골드아폴로가 만나 계약을 체결한 BAC 컨설팅의 크리스티나 바르소니-아르시디아코노 최고경영자(CEO)의 이력도 수상했다. 그는 이력에 유럽위원회에서 위원회로 활동했다고 적어 뒀으나, 유럽위원회는 그와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BAC 컨설팅의 대표이자 유일한 직원이다. 그는 NBC에 “나는 호출기를 만들지 않았다. 그저 중간 거래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미국 당국자 등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이번 폭발 사건의 배후라고 추측하고 있다. 제작·유통 과정에서 기기마다 배터리 옆에 무게 1~2온스 정도되는 소량의 폭발물과 원격 기폭장치를 심었다는 분석이다.

레바논의 한 고위 안보 소식통도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가 수개월 전 헤즈볼라에서 구입한 삐삐 5천개에 폭발물을 심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측은 이번 사건 배후에 대한 추측에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폭발 사고가 발생한 지 몇시간 후 이스라엘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는 “전쟁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고 발언했다. 미국 CNN 방송은 이 발언이 암묵적으로 폭발 사건 배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