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성전(聖戰)을 앞둔 십자군 앞에 강림한 성녀(聖女)를 영접한 것 같았던 100분이었다.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실내체육관에서는 팝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의 역사적인 첫 내한 공연이 펼쳐졌다.
‘거츠 월드 투어(GUTS World Tour)’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콘서트는 칭찬할 부분이 많은 공연이었다.
일단 눈에 띄는 부분은 무대 퀄리티다. 무게 약 100톤에 달하는 무대 장비를 직접 공수해 해외에서와 똑같은 무대를 재현한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돌출무대를 빠짐없이 사용하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기상천외한 무대 연출로 현장을 찾은 관객의 귀는 물론 눈까지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었다.
특히 투명한 바닥을 이용해 발밑에서 찍어 올리는 카메라 앵글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고, 초승달 모양의 공중 플로팅 무대에 앉아 관객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며 노래를 이어가는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을 명장면이었다.
무대 장비와 연출뿐만 아니라 밴드 세션과 댄스팀 역시 대단했다. 긴 시간 호흡을 맞춰온 게 분명한 팀워크의 밴드 세션과 단순 백댄서의 영역을 넘어 여러 무대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댄스팀의 퍼포먼스는 이날의 공연을 올 한해 진행된 내한 공연 중 가장 앞자리에 두기에 부족함이 없게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10억 회 이상을 달성한 곡이 7곡에 달하며, ‘발표한 전곡이 히트곡’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음원 파워와 대중성은 공연의 방점을 찍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표면적으로 칭찬할 부분이고, 사실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발산하는 에너지 그 자체였다.
직접 등장하기도 전인 오프닝 영상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를 보여준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첫 곡인 ‘bad idea right?’가 시작되자마자 현장의 관객 모두를 들썩이게 하는 에너지를 뿜어냈다.
단순한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 무대 위의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분명 어떤 아우라와 후광이 비쳐 보이는 존재였다.
마치 위기의 프랑스 왕국을 구하기 위해 홀연히 나타난 잔 다르크나 성지를 되찾기 위해 전쟁에 나서는 십자군 앞에 강림한 성모 마리아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날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보여준 에너지는 그 정도로 사람을 잡아끌고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하나의 종교가 됐고, 현장의 관객은 이를 추종하는 신도가 되어갔다. 그동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광신(狂信)이란 단어가 저절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라는 종교의 교리는 딱 4가지였다. 노래하고, 춤추고, 소리 질러라. 그리고 뛰어라. 이날 현장에 모인 약 7500여 명의 광신도들은 절대적인 사계(四戒)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를 수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올리비아 로드리고라는 성녀를 100분간 영접하고 돌아서는 길에는 급기야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눈물의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좋은 음악과 무대에 대한 기쁨과 환희, 감동일 수도 있고, 수십, 수백, 수천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의 압도적인 재능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일 수도 있다.
혹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같은 나이였을 때, 그저 무의미하게 허송 세월을 보낸 스스로에 대한 후회와 회한, 아쉬움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분명한 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청춘’의 다양한 감정을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자극하고 다시 일깨워 줬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공연을 보고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할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뿜어내는 에너지의 파장이 내 안의 무언가와 일치하는 순간, 지금까지 한 이야기자 전혀 과장이나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처럼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치게 만드는 공연이었지만, 그 끝에 남은 것은 결국 후련함이었다. 마치 한바탕 왁자지껄한 100분의 고해성사를 경험한 기분이다.
전자신문인터넷 최현정 기자 (laugardag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