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공지능(AI) 전문가 10명 중 8명은 우리나라의 AI 기술력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중국 같은 AI 선진국과는 기술 격차가 여전하다고 분석했다. 기술 격차 이유로는 전후방 산업의 인프라·생태계와 산업 육성에 필요한 '돈줄'이 부족하다는 진단이 가장 많았다. 국내 AI 산업을 위한 인프라·생태계를 육성하고 투자 자금을 위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韓 AI 기술, 선진국과 격차 나지만 준수한 수준
국내 AI 전문가 73명 가운데 우리나라 AI 기술력을 6~7점이라고 평가한 응답자가 63%로 가장 많았다. 이 중 21.9%는 이보다 더 높은 8~10점이라고 응답했다. 이어 4~5점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3.7%였다. 10점 이상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1.4% 있었다. 반면 4점 이하라고 답한 응답자는 없었다.
AI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의 AI 기술력에 대해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최고 수준 AI 기술을 갖춘 미국, 중국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를 뒤쫓아 갈만한 기술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AI 경쟁력이 세계 주요국 중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한다고 평가한 영국 데이터 분석업체 토터스인텔리전스(The Global AI Index) 조사 결과와도 비슷하다. 토터스인텔리전스는 2020년부터 글로벌 AI 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세계경제포럼(WEF) 등에서 소개되며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업체는 우리나라 AI 경쟁력을 2020년 8위에서 2021년과 2022년 7위로 평가했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경쟁력을 6위로 상향했다. 미국, 중국, 싱가포르, 영국, 캐나다에 이은 순위다. 이스라엘, 독일, 일본, 프랑스 같은 산업과 과학기술 기반이 충분한 국가들을 앞서는 수치다.
◇“AI 산업 인프라, 자금 특히 부족”
반면 우리나라가 AI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결하기 위한 과제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AI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AI 기술 수준이 미국, 중국에 비해 뒤처지는 원인으로 'AI 전후방 산업 인프라·생태계'와 '산업 육성에 필요한 펀딩·투자 자금'으로 진단했다. 경제 규모가 크고 기술 지원이 방대한 미국, 중국과 비교해 우리나라가 '규모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전문가들은 '전후방 산업의 인프라 및 생태계 부족(67.1%)', '산업 육성에 필요한 펀딩 및 투자 자금 부족(61.6%)'을 문제로 인식했다. 이어 '법제도 규제로 인한 산업 억제(41.1%)', '정책적 거버넌스 부재(35.6%)'와 'AI 인재 육성 및 교육 인프라 부실(35.6%)' 순으로 응답이 많았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복수 응답을 허용했는데, 문제 원인으로 하나만 꼽은 응답자는 73명 중 2명에 불과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AI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환경적 요소가 많다고 진단한 것이다.
AI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AI '정책'보다는 AI '산업 생태계'에 더 문제점이 많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이 AI 기술 격차의 원인으로 꼽은 전후방 산업의 인프라·생태계, 펀딩·투자 자금 등은 시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후방 산업 인프라·생태계는 전문가 10명 중 7명이 중요하다고 꼽은만큼 AI 기술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물론 정부의 정책과 제도 또한 AI 기술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AI 전문가들은 AI 기술 격차의 원인으로 '법제도 규제로 인한 산업 억제(41.1%)', '정책적 거버넌스의 부재(35.6%)'와 'AI 인재 육성 및 교육 인프라의 부실(35.6%)'도 만만치 않은 비율로 응답했다. 시장 생태계와 정책·제도 모두를 혁신해야 우리나라가 AI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봤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