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정부의 전기차 산업 육성 정책이 결실을 맺고 있다. 중국 정부는 21세기 자국의 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차 산업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신에너지자동차(NEV), 즉 전기동력차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했다. 당근과 채찍 정책을 통해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쏟아부어 자급자족형 전기동력차 산업 공급망을 구축했다.
중국의 전기동력차 생산 업체만 2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올해 8월 전기동력차 월별 판매 물량이 세계 최초로 100만대를 넘었다. 신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전기동력차 판매 비중도 7월 이후 지속 50%를 상회했다. 지난해 120만대에 달했던 중국의 전기동력차 수출이 주요국 정부의 고관세 부과로 인해 6월에 전월 대비 13.2% 감소한 8만6000대에 그쳤지만 상반기 중국의 자동차 수출에서 차지하는 전기차 비중은 22%를 기록했다.
중국 자동차 수출은 유럽과 러시아, 멕시코 등 신흥국 수요에 힘입어 증가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수출도 다시 증가, 8월 9만9000대를 기록해 전년 동월 대비 23.7% 증가했다. 올해 8월까지 중국 전기차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1% 증가한 78만7000대를 기록했다. 수출 증가는 우리 부품 업체 전체 수보다 많은 1만8000개로 추정되는 미래차 부품 업체와 700만명 넘는 산업계 연구개발 인력이 뒷받침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생태계 다양성과 외연 확장을 촉진하고, 국내외 이업종 기업간 전략적 제휴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수요는 경기에 민감하다. 중국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자 지난해 3009만대를 기록한 중국의 자동차 수요가 내연기관차와 고급차 부문에서 감소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노후차 교체 프로그램을 통해 수요 촉진에 나섰지만 중국의 내연기관차 수요는 6월부터 3개월간 감소했다. 하지만, 8월 중국의 전기차 수요는 전월 대비 17%, 전년 동월 대비 43.2% 증가한 103만대를 기록했다. 반면, 고급차의 대명사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중국 시장 판매는 올해 8월까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0%와 11% 각각 감소했다. 포르쉐 판매는 상반기에 반토막 났다.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 위축과 니오, 샤오펑, 리오트의 3대 중국 고급 전기차 업체가 가성비뿐 아니라 다양한 디지털 기기까지 탑재해 중국 소비자를 독일 3대 업체로부터 빼앗아 가고 있다. 지난해 벤츠는 세계 판매 물량의 36%를 중국 시장에서 판매했고, BMW는 32%, 포르쉐는 25%를 각각 판매했다. 독일 고급차 3사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월 37.3%에서 올해 8월에는 53.9%로 증가했다. 올해 8월까지 중국의 전기차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35.3% 증가한 602만대를 기록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혁신 역량이 일취월장하면서 1990년대 초 중국 시장의 개방 당시 회자됐던 다국적기업 무덤론이 현실화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선진 업체의 판매와 시 점유율이 하락하면서 하나둘 퇴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을 피력한 폭스바겐은 내년 연간 36만 대의 자동차 생산이 가능한 장쑤성 난징 공장의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은 이미 2년 전부터 중국 생산을 축소해 왔다. 외국 업체 중 가장 많은 판매 물량을 기록했던 폭스바겐의 중국 합작 법인(VW-SAIC)의 지난해 공장 가동률은 58%에 그쳤다.
일본 업체의 구조조정도 이어지고 있다. 스즈키 자동차에 이어 미쓰비시 자동차가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혼다는 지난해 10월 광저우공장을 폐쇄하고 11월부터 우한 공장의 생산을 중단했다. 혼다는 올해 2분기 중국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2%나 감소했다. 닛산 자동차도 6월 연간 생산 능력 13만대로 닛산의 중국 생산량 10%를 담당해온 장쑤성 창저우 공장을 폐쇄했다. 닛산의 지난해 중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 현대차도 2021년 베이징 1공장에 이어 올해 1월 충칭 공장을 매각했다. 현대차는 올해 내로 생산 효율성이 높았던 창저우공장도 매각할 계획이다.
미국 전문가는 자국 자동차 업체의 중국시장 철수를 권고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대중국 통상 압력에 따라 중국 정부도 미국 자동차 업체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견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이미 미국 자동차 업체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7월 9.1%에서 올해 6월 6%까지 하락했다. 8월 브랜드별 소매 판매 순위에서도 상하이GM우링이 7위, 테슬라가 9위를 기록했고 포드는 10위권 밖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도 같은 기간 15.1%에서 13.2%로 감소했다. 유럽연합(EU) 브랜드 역시 18.7%에서 16.7%로 점유율이 감소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중국 자동차 수요가 급증해 2009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했다. 2000년 중국 자동차 생산은 200만대에 불과했고 전기차 판매는 2010년 5000대에 그쳤다.
하지만, 2015년 중국 정부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2025' 전략을 발표한 후 중국의 전기차 생산과 판매가 급증해 지난해 내수 판매만 950만대, 수출은 120만대를 기록했다. 중국 정부는 2018년부터 5년간 외국 자동차 업체의 지분 제한을 철폐했다. 이에 테슬라가 독자적인 전기차 공장을 상하이에 건설했다.
중국 정부 지원에 힘입어 중국 브랜드 내수시장 점유율은 2020년에 30%를 넘어섰다. 2022년 10월 51.53%를 기록했고, 올해 6월 64.4%로 증가했다. 외국 브랜드업체가 새로운 경쟁 전략이나 철수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같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았던 중국 시장에서 선진 완성차업체가 밀려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브랜드 업체는 내수시장에서 경쟁 격화에 대응하고 보호무역 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수출과 해외 직접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반면, 선진 자동차 업체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중국 업체와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중국 업체가 세계 전기동력차 시장을 선점한 데 이어 자율주행차 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자 선진 자동차 업체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미 중국 자율주행차 종합경쟁력은 우리나라를 추월했다.
중국 자동차 업체가 빠른 속도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정보통신업체(ICT)가 미래차 시장에 속속 진입하자 전통적 자동차 업체는 내부 역량과 자원을 활용한 유기적 성장과 인수합병, 전략적 제휴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
최근 선진 자동차 업체들의 전략적 제휴는 1980년대 중반 미국 정부가 공동 연구개발과 공동 생산에 대한 반독점법 적용을 완화하면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선진국 자동차 기업간 대표적 제휴 사례로는 제너럴모터스(GM)와 토요타,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 폭스바겐과 포드간 제휴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간 제휴 성과는 부진했다. 내연기관차 분야에서 제휴는 수요 둔화로 한계를 드러냈고, 미래차 분야에서 제휴는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해지자 프랑스 푸조시트로엥은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스텔란티스로 재탄생했다.
르노는 닛산, 미쓰비시, 러시아 압토바즈와 제휴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토요타, 다이하츠, 스즈키, 마즈다 그룹과 혼다, 닛산, 미쓰비시, 스바루 그룹으로 재편되고 있다. 토요타는 BMW, 텐센트 등과 협력하고 있으며, 현대차와 제휴도 모색하고 있다. 미국 기업 가운데 포드가 폭스바겐과, GM은 현대차와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간 인수합병의 성과 창출이 어렵듯이 르노와 닛산 간의 제휴는 갈등 속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년 전만 해도 선진 자동차 업체는 중국산 자동차의 세계 시장 점유율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을 제외한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산 자동차의 점유율이 8.2%를 기록하고 올해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자 구조개편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국내 일각에서는 독일 자동차 산업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달리 독일 산관학연은 수년 전부터 자국 자동차 산업의 구조개편 전략을 강구해오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20~2023년 가운데 20인 이상 고용 독일 1차 부품 업체수가 700여개에서 615개로 감소하고 고용은 3만명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또, 독일 부품 업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19년 28%에서 2022년 25%로 3% 포인트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세계 시장에서 독일 자동차 산업의 입지가 약화하자 독일 자동차 업계는 2024~2028년 중 2800억 유로를 연구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또, 독일 산업연맹은 미국 보스턴컨설팅과 독일경제연구소(IW)와 함께 독일 산업의 대전환을 위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중국발 세계 자동차 산업의 구조 개편이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2022년 세계 3강 진입 전략을 수립했으며,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세계 3위 자동차 판매 업체로 성장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잘나갈 때가 위기'라는 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국은 1970년대 말 2차 오일쇼크 이후 크라이슬러 사태와 2009년 GM 파산이라는 고초를 겪었다. 21세기 세계 경제를 지배할 것이라던 일본은 1991년 거품 붕괴 이후 30년간 침체를 겪으면서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됐다. 2015년 디젤게이트로 곤욕을 치렀던 독일 자동차 산업은 올해 폭스바겐 사태로 인해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아직 국내 현장에서는 정보와 사람 부족을 하소연하고 있다. 부품 산업의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으며 수출도 감소하고 있다. 우리 자동차 업계가 쌓고 있는 미래 모빌리티 금자탑이 사상누각이 되지 않도록 다양한 시각에서 조사 분석을 통해 중국발 구조 개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 lyg8779@hanmail.net
〈필자〉이항구 원장은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서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다.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호서대 조교수를 겸하다가 올해 2월 제9대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에 임명됐다. 친환경차 보급뿐만 아니라 기업간 협업법 제정과 상생 결제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 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