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업종·규모를 막론하고 서로의 AI 역량을 결집하는 연합전선 구축이 본격화됐다. 목표는 소버린 AI(주권 AI) 확보와 글로벌 AI 시장 공략이다. 혼자서는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해외 빅테크와 맞서는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AI 원팀 전략을 뒷받침하고 실질석 성과를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AI 동맹 활동에 대한 담합 우려를 해소하고, AI 패권경쟁에 맞설 수 있는 메가 얼라이언스(연합체) 구성까지 전향적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AI 시장 규모는 2030년 153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같은 기간 글로벌 AI 시장은 54배 더 큰 8267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 AI 기업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그러나 빅테크와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양적·질적 성장을 이루기엔 자본도 시간도 부족하다. 찾아낸 해결책이 동맹이다. 각자의 강점을 하나로 모으는 합종연횡을 통해 글로벌 시장 개척에 속도를 올린다는 구상이다.
◇ 뭉쳐야 산다…AI 전문 기업 '얼라이언스' 구성 속도
국내 대표적 AI 관련 동맹은 지난해 SK텔레콤 주도로 출범한 'K-AI 얼라이언스'가 있다. 출범 당시 7개사로 출발해 현재 18개사까지 몸집을 키웠다. SKT를 비롯해 몰로코, 베스핀글로벌, 스캐터랩, 코난테크놀로지 등 각 분야 최고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포진했다.
올해부터 역량 있는 AI 기업의 규모감 있는 참여를 위해 투자사 중심 구성에서 공유·협력·참여 기반 개방형 얼라이언스로 전환했다. 글로벌 진출을 위한 AI 사업 시너지 확대를 본격화한다. 유영상 SKT 대표는 “혼자서 AI 혁신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협력은 필수”라며 “글로벌 AI 시장에서 K-AI의 저력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는 AI 전문기업간 우군 확보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지난 6월 코오롱베니트 주도로 발족한 'AI 얼라이언스'는 AI 수익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롯데이노베이트, 교보DTS, 솔트룩스, 이스트소프트 등 60여개 기술·솔루션·인프라 전문기업이 동참했다. 각사 전문성을 바탕으로 AI 비즈니스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 사업 기회를 확장할 예정이다.
강이구 코오롱베니트 대표는 “많은 기업이 AI를 검토하지만 막대한 투자 비용 부담과 실제 비즈니스 기회 창출의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며 “얼라이언스에 합류한 혁신 AI기업들과 적극 협력해 그 해답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에는 중소기업들이 의기투합한 'AX 얼라이언스'가 출범했다. 클루커스, 누리어시스템, 링네트, 투라인코드, 와이즈넛, 위즈 등 6개사가 모여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공략한다. AI 수요 기업에 AI 플랫폼 구축 서비스를 엔드투엔드로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AX얼라이언스는 AI 인프라부터 데이터 전처리까지 각사의 업무 분담을 통해 효율적 AI 구축 플랫폼을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국내에서 레퍼런스를 쌓아 해외 진출도 타진한다. 성과에 따라 공동 출자로 합작법인 설립까지 목표로 잡았다.
◇ AI동맹 실질 성과 내려면 정책 뒷받침 필수…'메가 얼라이언스' 추진 필요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연대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하나의 기업이 AI 구축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 확보, 인프라 구축 등 진입장벽이 높아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쉽지 않다. 장점도 다르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려면 기업간 역할 분담이 필수다.
국내 AI 관련 전문가들은 얼라이언스가 단순 우군확보에 그치지 않고 소버린AI 기반 글로벌 무대 진출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AI 주권 측면에서 원팀 구성에 나서는 점은 바람직하지만 이해관계가 다르다보니 외형만 갖추고 실질적 협력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AI 신제국주의 시대인 만큼 시장에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정부가 명확한 미션과 역할을 부여해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이러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얼라이언스가 너무 많으면 역량이 분산될 수 있다. 각 분야 국내 최고 기업이 협력하면 시너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국가 차원의 메가 얼라이언스 필요성을 시사했다.
앞서 유영상 SKT 대표 역시 이천포럼에서 “삼성전자, 네이버와 함께 대한민국의 어벤저스를 만들어 (글로벌 AI 시장에) 같이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협력 의지를 밝혔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도 민관이 뭉친 글로벌 AI 원팀코리아 추진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기업간 AI 동맹이 실효성을 갖추려면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칫 얼라이언스간 사업 협력이 담합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기 때문이다.
권남훈 경제사회연구원장은 “얼라이언스는 담합 규제 여지가 많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어느 범위까지 협력해도 되는지 고민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주면서 AI 얼라이언스에 전향적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