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며칠 전 챗GPT 개발사인 오픈AI가 추론에 특화된 AI 모델 'o1'을 출시했다. 오픈AI는 o1-프리뷰(preview)와 o1-미니(mini)의 두 가지 버전을 공개하면서 o1이 과학, 수학, 코딩 등 복잡한 추론이 포함된 문제에서 과거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를 사용해 본 다수의 전문가들은 o1이 복잡한 데이터 과학 문제를 풀기엔 여전히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사용자가 본인이 원하는 바를 AI에 맞춰 전달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번거로움을 일부 해소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른바 AI가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능력을 탑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구글에 인수된 캐릭터닷AI 역시 사용자의 명령을 AI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듬어 주는 도구인 프롬프트 포엇(Prompt Poet)을 공개했고, 이를 통해 기술역량이 부족한 일반인이 쉽게 대규모언어모형(LLM)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픈AI와 경쟁하고 있는 앤쓰로픽 역시 이달 초 코딩에 강점을 보이는 '클로드 3'(Claude 3)의 토큰 컨텍스트 창을 50만개로 확장한 기업용 버전 '클로드 엔터프라이즈'를 출시했다. 검색과 연계한 AI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퍼플렉시티(Perplexity) 역시 SK텔레콤과의 제휴를 통해 한국 진출을 본격화했다.
빅테크와 스타트업을 가리지 않고 기업들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새로운 AI 서비스를 개발하고,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의 참여자들이 모두 AI가 철도, 전기에 이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핵심 유틸리티임에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말로 AI가 모든 산업의 핵심이 되는 새로운 지식자원으로 부각했다는 의미다.
이에 많은 국가들은 신지식재산으로서 AI와 데이터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의 산업화를 지원함과 동시에 기존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더불어 이들 국가에서는 기존 '약한 AI' 시대에 만들었던 법과 제도를 '강한 AI'의 등장에 맞게 재정립하기 위해 관·산·학·연 간 치열한 논쟁을 바탕으로 의견을 수렴한 후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있다.
AI의 산업화에 대응해 기존 지식재산권 보호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작년 10월 백악관에서 'AI 행정명령'을 발표한 이후, 올해 4월에는 생성형 AI 저작권 공개법안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에는 생성형 AI의 학습 시 기존 저작물을 활용할 경우 그 내용을 저작권청에 통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미국은 AI를 활용해 만들어진 산출물의 산업화에도 적극적이다. 작년 3월 저작권청은 'AI 산출물에 대한 저작권 등록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며, 올해 2월 특허청은 'AI 지원 발명에 관한 심사지침'을 발표해 AI를 활용해 만들어진 산출물의 지식재산권 인정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EU에서는 올해 5월 인공지능법(AI Act)이 최종 승인됐으며, 프랑스에서는 AI와 저작권간 충돌을 해소하기 위한 지식재산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중국 역시 작년 7월 '생성형 AI 서비스 잠정 방법'을 시행하면서 AI를 활용해 만들어진 지식재산권의 보호와 AI로 인해 침해된 기존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규정을 마련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술 발전에 비해 제도의 정립이 늦어지고 있다. AI 기본법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이며, 기존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과 콘텐츠산업진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AI 알고리즘 학습 시 저작물의 이용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황이며,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들어진 콘텐츠의 표시의무와 관련한 규정도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기술적으로 AI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하고 있다. 미국, 중국의 초대규모 인적, 물적 자원 투입과 이에 따른 성과에 비길 수는 없지만, EU나 일본 등 다른 주요 경쟁국과 비교하여 결코 뒤처지지 않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생성형 AI 분야 특허 출원건수가 세계 5위권인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AI 산업의 발전을 지원하는 일과 기존 저작권을 보호하는 것은 결코 상충되는 이슈가 아니다. 보다 나은 AI 서비스의 개발을 위해 데이터를 학습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산업재산권, 저작권을 포함한 지식재산권을 존중하고, 기존 창작자의 권리를 확실하게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 AI와 인간이 힘을 합쳐 새롭게 만들어낸 지식재산권에 대해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AI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나에게만 좋은' 법과 제도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AI 산업이 살고, 양질의 AI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데이터와 콘텐츠가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다.
황보현우 홍콩과기대(HKUST) 겸임교수·전 하나금융지주 그룹데이터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