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기강 잡는 '엄석대' 문어…문어발 꿀밤, 이유는?

큰 파란 문어가 협동 사냥하는 모습. 문어 왼쪽 어류는 '블루 고트피쉬', 오른쪽 어류는 '홍바리'다. 사진=에두아르도 삼파이오/사이먼 진긴스
큰 파란 문어가 협동 사냥하는 모습. 문어 왼쪽 어류는 '블루 고트피쉬', 오른쪽 어류는 '홍바리'다. 사진=에두아르도 삼파이오/사이먼 진긴스

지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문어가 다른 어류들과 협동사냥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물고기들을 쥐어박는 모습이 포착됐다.

막스 플랑크 동물 행동 연구소의 에두아르도 삼파이오 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홍해에 서식하는 큰 파란 문어(학명 Octopus cyanea)가 여러 물고기들과 협동 사냥하는 모습을 연구한 결과를 23일(현지 시각) 과학 저널 '네이처 생태와 진화'를 통해 공개했다.

문어는 종종 같은 종의 다른 문어를 피하고, 위장한 채로 혼자 돌아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문어가 다양한 어류와 상호작용하는 풍부한 사회성을 가졌다는 점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문어의 사회성을 알아보기 위해 한 달간 홍해에서 큰 파란 문어 13마리를 표적 촬영해 데이터를 확보했다. 총 13개, 120분 분량으로 추려진 영상에는 문어가 다른 어류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이 다각도로 담겼다.

이후 영상을 소프트웨어(SW) 프로그램에 입력해 3차원(3D)으로 바꾸고, 각 개체들이 다른 어류와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를 측정했다. 또한 어떤 어류가 다른 어류를 어떻게 머무르게 하거나 끌어당겼는지 등을 확인했다.

큰 파란 문어가 협동 사냥하는 모습. 협동 사냥에 방해가 되자 발로 물고기를 때리고 있다. 사진=에두아르도 삼파이오/사이먼 진긴스
큰 파란 문어가 협동 사냥하는 모습. 협동 사냥에 방해가 되자 발로 물고기를 때리고 있다. 사진=에두아르도 삼파이오/사이먼 진긴스

영상을 분석한 결과 문어와 가장 협동 사냥을 잘 한 물고기 중 하나는 블루 고트피쉬(학명 Parupeneus cyclostomus)다. 이 물고기들은 새로운 틈새를 정찰하고, 그 지역 주변을 맴돌거나 문어에게 돌아와 먹이를 찾을 만한 곳을 보여줬다.

만약 문어가 자신들을 따라오지 않으면, 그 자리에 남아 따라오라는 듯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연구팀은 “문어와 블루 고트피쉬의 협동이 시작되면, 행복한 협동 사냥이 됐다”고 전했다.

큰 파란 문어가 협동 사냥하는 모습. 협동 사냥에 방해가 되자 발로 물고기를 때리고 있다. 사진=에두아르도 삼파이오/사이먼 진긴스
큰 파란 문어가 협동 사냥하는 모습. 협동 사냥에 방해가 되자 발로 물고기를 때리고 있다. 사진=에두아르도 삼파이오/사이먼 진긴스

반면 비협조적인 물고기 종도 있었다. 바로 홍바리(Blacktip grouper; 학명 Epinephelus fasciatus)다. 이 물고기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다른 물고기가 일을 하기를 기다렸다가 달려들어 먹이만 낚아채는 얌체 같은 짓을 일삼았다.

'무임승차'를 이어간 홍바리들은 결국 문어에게 맞았다. 주 저자인 삼파이오 연구원은 “문어는 홍바리를 가장 많이 때렸다”면서 “많이 맞는 개체일수록 그 무리의 주요 착취자라는 뜻이다. 이 어류들은 매복 포식자로, 움직이지 않고 먹이를 찾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문어가 먹이를 훔쳐먹는 물고기만 때린 것은 아니다. 주변에 물고기들이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지 않아도 주먹을 날렸다. 삼파이오는 “무리가 움직이지 않고 모두 문어 주변에 있으면 문어는 펀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서식지를 따라 이동하면 먹이를 찾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문어는 누구도 때리지 않았다. 문어는 행복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이 무리가 특정 먹이를 함께 잡아 나눠먹은 것은 아니다. 함께 이동하며 사냥했을 뿐, 먹이는 먼저 발견하는 개체가 먹었다. 틈 사이로 촉수를 밀어넣는 문어가 제일 많이 먹이를 먹었다. 일부 물고기들은 문어가 먹이를 놓쳤을 때만 먹이를 먹을 수 있었다.

문어가 무리를 이끄는 리더는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 문어가 무리 중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맞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일부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에게 달려들어 무리의 구성원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는데, 문어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다. 두족류가 지배적인 개체였음을 시사한다. 또한 문어는 무리가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연구팀은 문어의 사회성이 습성이 아닌 학습에 의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삼파이오 연구원은 “내 직감으로는 그들이 배우는 것 같다. 어린 문어가 큰 문어보다 물고기와 협력하는 데 더 미숙했다”고 전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해양 동물 행동 연구자 한나 맥그리거는 “이 연구는 정말 매혹적”이라며 “완전히 다른 종의 집단이 함께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연구”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같은 사회성이 큰 파란 문어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인지, 문어가 실제로 고트피쉬를 선호하고 홍바리를 싫어하는지, 구체적으로 각 종이 어떤 이익을 얻는 것인지 등 아직 확인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연구팀은 추가 연구를 통해 각 종이 협동 사냥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확인하고, 무리간 의사 소통 수단을 더 조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