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병원을 이탈한 지 7개월이 지났다. 의대 교수까지 가세한 의정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을 막자고 시작한 정부의 의료개혁에 의료계가 거세게 반발했고, 환자들은 응급실, 소아과 등 필수의료 공백에 힘들어하고 있다.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던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최근 작은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이 같은 국면 전환에는 정부의 결심이 한몫했다.
지난달 30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개혁 추진상황 브리핑에서 전공의들을 향해 “매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공식 사과했다. 그동안 환자와 가족들을 향해 송구하다는 사과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전공의를 향한 공식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한 발 더 물러서 의료계가 줄기차게 요구하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료인력 수급 추계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쟁점일 수도 있던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구성은 총 13명의 위원 중 7명을 의료계가 추천하는 인사로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2025년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고수하면서도 의정갈등 출구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꾸준히 협상 카드를 내밀었다.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경우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방침을 누차 강조한 데 이어 2026년 의대 정원 조정이라는 안까지 꺼내 들었다.
2025년 의대 정원 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부는 갈등 해소를 위해 할 만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제는 정부의 협상안을 검토할 가치도 없다고 일관하던 의료계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동안 의료계는 협상 전제 조건으로 의대 정원 확대 백지화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내년도 의대 정원 조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의료계도 2025년 의대 정원 조정 카드가 의미 없어진 상황에서 다른 조건을 내걸고 의정 갈등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 단체는 정부가 제안한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참여를 거부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재조정 없이는 어떠한 협상과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연이은 정부의 유화책으로 의사들의 태도 변화가 기대됐지만, 결국 달라진 건 없었다.
의사 단체가 대화 조건으로 내년도 의대 정원 확대 백지화를 고수할 경우 출구전략은커녕 갈등만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가 애초에 환자를 위한다던 명분도 무색해 진다.
의료계는 더 이상 대화 전제조건을 내걸지 말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내년도 의대 정원 규모를 의료계 입장을 반영, 수정할 수 있도록 대화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 더해 의료계가 꾸준히 지적하던 '수가' 문제도 대화를 통해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동참해야 한다. 의료계는 의사 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료에 의료인이 가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필수·지역 의료 수가 체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의 수가 체계 개편에 '뒷북 비판'이 아니라 개편 과정에 적극 참여해 의료 현장 수요를 반영하게끔 협업해야 한다.
의료계는 정부가 전공의들의 '자존심'을 짓밟은 게 그들이 돌아오지 않은 이유라고 한다. 늦었지만 정부는 사과했고, 한걸음이 아닌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제는 의료계가 답해야 할 때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