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운행 중 발생하는 배터리 데이터를 놓고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제조사 간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다.
이달훈 LG에너지솔루션 BMS개발센터장(상무)은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완성차 업체에서 주행 데이터를 셀 제조사와 공유하는 데 소극적”이라며 “중국은 정부 주도로 모든 차의 배터리 데이터를 서버에 전송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데이터 규제가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동건 현대자동차 배터리셀개발실장은 같은 행사에서 “배터리 생산 중 불량을 잘 걸러내는 게 배터리 제조사 역할”이라며 배터리가 전기차에 탑재된 이후 안전성 관리는 완성차 업체의 몫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전기차 시장 개척을 위해 협력하는 양 업계가 데이터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확연한 건 데이터가 미래 먹거리인 서비스와 직결돼서다. 전기차 배터리가 주행 중 어떤 상태로 구동하고 변화하는지 알게 되면 더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자동차의 현재 가치를 산정해 거래를 한다거나 배터리 관리 및 구독 서비스를 판매하는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즉 데이터를 쥐고 있으면 또 다른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가 시장 선점을 위한 물밑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고 연결되는 시대, 데이터의 중요성은 자동차도 예외가 아니다. 전기차를 넘어 자율주행차까지 발전하면 데이터는 더 큰 값어치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경제에서 경쟁은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주도권 다툼에 앞서 우선해야 할 게 있다. 데이터 활용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전기차는 여전히 화재 우려를 안고 있다. 이를 불식해야 시장이 확대되고, 서비스 기회도 엿볼 수 있다. 배터리와 완성차 제조사가 더 큰 비전을 향해 열린 자세로 협력해 안전한 제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