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레바논에서 발생한 이른바 '삐삐(무선호출기) 테러'의 주체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이며, 이 작전을 2년 전부터 구상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과 아랍관 및 미국 안보 당국자 등 여러 관계자를 인용해 '삐삐 테러'가 모사드가 계획한 치밀한 작전의 결과였다고 보도했다.
삐삐 테러는 지난달 17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거점을 중심으로 레바논 전역에서 발생했다.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삐삐 수천대가 동시다발로 터지는 사건이었다. 이튿날에는 휴대용 무전기(워키토키)까지 연쇄폭발하면서 사상자가 더욱 늘어났다. 폭발한 삐삐와 워키토키는 헤즈볼라가 내부 연락용으로 사용하는 통신기였다.
WP는 모사드가 이 작전을 가자지구 전쟁 1년 전인 2022년부터 구상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전쟁은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한 것을 계기로 발발해 1년째 이어오고 있다.
모사드는 역내 친이란 무장세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헤즈볼라의 내부에 침투하기 위해 수년간 노력했는데, 이 가운데 헤즈볼라 지도부가 도청과 해킹, 추적을 우려한 점을 연이용했다는 것이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2023년 대만 브랜드인 아폴로 호출기(AR924 기종) 대량 구매 제안을 받았다. 모사드는 헤즈볼라가 의심할 수 있는 미국이나 다른 이스라엘 동맹국 업체 대신 유대인과 연관 없는 대만 업체를 내세운 것이다.
이 제안은 아폴로와 관련 있는 전 중동 영업 담당자에 의해 이뤄졌다. 신원과 국적을 밝히길 거부한 이 여성은 아폴로 삐삐를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가진 회사를 운영했다.
아폴로 측은 이 여성의 주문에 따라 삐삐 생산을 외부 업체에 맡겼고, 모사드의 철저한 감독 아래 이스라엘 안에서 '삐삐 폭탄'이 제조됐다고 WP는 전했다.
85g 미만의 작은 호출기에 강력한 소형 폭발물이 숨겨진 배터리 팩을 장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당국자들은 WP에 만약 호출기를 엑스선(X-ray)로 확인했더라도 탐지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물이 정교하게 숨겨져 있었다고 했다.
또한 이 호출기로 암호화된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두 손으로 두 개의 버튼을 눌러야 했는데, 당국자들은 사용자들의 피해를 키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부상자 대부분이 손과 얼굴을 다쳤다.
앞서 모사드는 2015년에도 헤즈볼라의 무전기에 도청 시스템과 폭발물을 심었지만, 도청에만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전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비밀 작전이라고 이스라엘 소식통은 전했다. 삐삐를 조달한 담당자 역시 이 작전에 대해서 몰랐다는 설명이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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