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정부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인공지능(AI) G3'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AI 분야에서는 막대한 투자와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이 타 국가들과 압도적인 격차를 벌리면서 G2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EU 국가와 한국, 싱가포르, 인도 등의 아시아 국가들이 G2를 멀찍이 뒤에서 추격하고 있는 형세다.
영국의 토터스 미디어가 발표한 2024년 글로벌 AI 지수에서 우리나라(27.2)는 미국(100), 중국(53.9)은 물론 싱가포르(32.3), 영국(29.9), 프랑스(28.1)보다 뒤처진 6위를 차지했다. 비록 3위와의 격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내건 'AI G3'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엔 갈 길이 멀다. 아래 단계인 독일(26.7), 캐나다(26.4), 이스라엘(25.5)과의 격차도 크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 AI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것은 투자와 인재 때문이다.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의 막대한 AI 투자와 세계의 우수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시장의 탄탄한 수요가 막강한 AI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국가 주도의 투자 공세와 인구 대국에 바탕을 둔 대규모 인재 양성 능력을 기반으로 초강대국 미국과 맞서는 AI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규모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은 물론 EU 및 아시아 국가들과 경쟁하기에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국가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지원, 육성해야 할 산업이 AI 이외에도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 전지, 첨단 모빌리티, 바이오·헬스케어, 로봇 등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정된 자원을 AI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해결책을 사람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민족은 뛰어난 두뇌와 교육열을 갖추고, 지난 수십년 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뤄낸 잠재력이 있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적'을 AI 분야에서 다시 한 번 이뤄낼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다. AI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수한 AI 인재 양성과 공급이 필수적인데, 우리는 인구 감소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 감소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고 있으며, 지방의 대학들은 정원을 채우지 못해 존폐를 걱정하는 실정이다. 우수한 AI 인재를 다수 양성해야 하는 시기에 인재 후보군조차 찾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AI G3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해답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2000년 전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 제국, 1000년 전 유라시아 대륙을 아우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던 몽골 제국,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는 공통점이 있다. 부족한 생산인구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체계를 개방형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팍스 로마나' '팍스 몽골리카' '팍스 아메리카나'의 핵심을 개방과 포용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인종과 문화가 다른 외국인에게 시민권은 물론 군인과 관료가 될 길을 터 줌으로써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국가 경쟁력의 기반으로 삼았다.
우리 역시 글로벌 시대에 부합하는 개방형 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뛰어난 AI기업과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자 하는 글로벌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이제 단일 민족을 부르짖던 시대에서 '팍스 코리아나'로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은 국가과학위원회(National Science Board)의 보고서를 통해 '인재가 곧 보물'임을 천명하면서 과학, 기술, 공학 및 수학(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 Mathmatics) 분야의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취업비자 H-1B를 우선 배정하는 인재 확보 정책을 내놓았다. 중국 역시 해외 석학 1000명을 국내로 유치한다는 '천인계획'(千人計劃)에 이어 '고급 외국인 전문가 유치계획'을 통해 AI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에서 발표한 2023년 글로벌 인재 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재 경쟁력은 134개국 중 24위를 차지한 반면, 해외 인재 유치 순위는 59위에 불과했다. 인구 절벽의 위기 시점에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최근 정부가 AI를 비롯한 첨단 분야의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톱티어'(top-tier) 비자를 신설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인 조치다. 지금이야말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치열한 AI 경쟁 속에 한 발 더 앞서 나가기 위해 '팍스 코리아나'로의 정책 전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다.
황보현우 홍콩과기대(HKUST) 겸임교수·전 하나금융지주 그룹데이터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