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사람'은 어떤 사람이지?
이미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착한사람'을 사전에 나오듯이 '언행이 착하고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한 사람'이라고 설명할 수 있나요? 설명하기 쉬운 것 같지만 뜬구름 같은 설명입니다. 말과 행동은 눈에 보이는 것이니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마음씨가 곱고 바르고 상냥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가 없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충분히 숨겨지고 우리는 이런 숨겨진 행동의 진실을 알고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유리한 입장인 사람을 두고하는 얘기라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나 봅니다.
하나의 사실에 각자의 진실이 난무하면서 우리는 이미 서로가 주체적 오만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생각과 논리가 서로의 이익과 윤리적 모호성을 가지고 오면서 관계적 분란의 씨앗이 되는 거죠.
이는 초개인적 사회를 불러오고 있고, 핵개인화, 초개인화 등 여러 형태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같은 현상을 각자의 생각과 논리로 설명하는 모습으로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관계의 변화가 눈에 보이게 일어나고 있고,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관계적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택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선택 장애인지, 인지 부조화인지, 자기 합리화인지 스스로 판단하기도 어려운 세상 속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기분?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에 직면하고, 내가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고, 후회를 줄이기 위해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하고 선택의 결과를 정당화하는 복잡한 심리 상태를 가성비, 갓성비, 갓생 다양하게 표현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선택의 다양성은 오히려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우리의 삶에 대해 만족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 내면을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선택은 성취와 효율을 추구하게 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다양한 가치관이 이기적 관점으로 재해석되어 형성되는 거죠.
이 결과 '착하다'는 하나의 사실에 각자의 진실과 이기적 관점이 반영되면서 '착하다'의 여러 의미와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으로 부정적이고 긍정적이고 서로가 맞다 틀리다 논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현상이고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택의 다양성을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유가 인지 부조화, 자기 합리화라는 더 큰 부담과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볼 때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방식대로 혼란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사람이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들 또한 당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함성룡 전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C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