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연 3.25%로 인하한 주된 이유는 물가상승률이 뚜렷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됐다고 판단해서다.
11일 38개월만의 금리 인하와 함께 한은이 공개한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한은은 “정부의 거시건전성정책 강화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주택시장에 관해서도 “수도권에서 가격 상승세가 둔화되고 거래량도 축소됐고, 지방에서는 부진이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특히 물가상승률은 더욱 뚜렷한 하락세를 나타냈다. 9월 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석유류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1.6%로 낮아졌다. 한은의 물가 목표인 2.0% 아래로 내려갔다. 한은은 “물가상승률은 낮은 수요압력으로 안정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당분간 2%를 하회하면서 금년 상승률이 지난 8월 전망치(2.5%)를 소폭 하회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주택 가격 안정화 여부에 따라 다음달에나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뚜렷한 물가상승률 하락은 물론 주택 시장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는 만큼, 둔화된 경기와 경제 성장률, 내수 부진 장기화를 막기 위해 빠르게 통화정책 전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국내 경제는 수출 증가세가 이어졌지만 내수 회복은 아직 더딘 모습”이라며 “향후 성장 경로는 내수 회복 속도, 주요국 경기와 IT 수출 흐름 등에 영향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간 금리차도 이번 결정으로 줄었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5%p 낮추는 '빅컷'에 나서면서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는 2.0%p에서 1.5%p까지 좁혀졌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한미간 금리 차는 1.75%p로 다시 벌어졌다.
이에 따라 3년여간 '긴축' 기조를 유지했던 한국의 통화정책도 앞으로는 경기 부양을 위한 '완화'로 전환하게 됐다. 2021년 8월 0.25%p 인상 이후 이어진 통화 긴축 기조가 끝나고 완화정책 시작을 알리는 3년2개월 만의 피벗이 이뤄졌다. 금리 인하 기준으로는 2020년 5월 이후 4년 5개월만의 인하다.
실제 실물경기 상황은 썩 좋지 못하다. 한은은 결정문에서 “국내경제는 수출 증가세가 이어졌지만 내수 회복세는 아직 더딘 모습”이라면서 “고용은 취업자수 증가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지만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지속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국내경제는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가겠지만 내수 회복지연 등으로 지난 8월에 비해 전망(금년 2.4%, 내년 2.1%)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향후 성장경로는 내수 회복 속도, 주요국 경기 및 IT수출 흐름 등에 영향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면서 실질금리 측면의 통화긴축 정도가 강화되고 성장전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금리인하를 통해 긴축 정도를 완화할 필요가 커졌다”면서 “오늘 기준금리를 25bp 인하하고 그 영향과 대내외 정책여건을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통화정책 방향도 기준금리를 중립적 수준으로 점차 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열린 금통위에서는 장용성 금통위원이 소수의견을 제시했고, 금통위원 6명 가운데 5명이 3개월 후 '동결' 입장을 보였다고 이 총재는 밝혔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