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은 그동안 우리 삶에 중요하지만 당장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선뜻 다가오지 않는 연구에 주어졌다. 심사시점에 사회적 이슈가 된 연구보다 오래 전 기초 분야의 연구를 우대했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달랐다. 현재 산업, 시장과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공지능(AI)에 주어졌다. AI연구자인 존 홉필드, 제프리 힌턴 교수에게 노벨물리학상이, 데미스 허사비스, 존 점퍼에게 노벨화학상이 돌아갔다. 홉필드는 1980년대 처음으로 인간 뇌신경 세포에 착안해 인공신경망 연구의 초석을 닦았다. 힌턴은 AI알고리즘의 딥러닝 심층학습 개념을 처음 고안했다. 챗GPT 등 생성형 AI 시대를 열었다. 허사비스와 점퍼는 AI예측 모델 '알파폴드'를 개발해 생물체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단백질의 복잡한 구조를 밝혔다. 항생제, 전염병 치료, 건강과 바이오산업 등 무궁무진한 기여를 가능하게 했다.
노벨상 심사기준을 보자. 새로운 발견, 발명을 통해 탁월한 연구 성과를 보여야 한다. 첫 발견 또는 첫 발명으로 지식의 기초를 쌓았는지, 새로운 지식과 분야를 만들었는지,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하고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심사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출해야 한다.
2024년 노벨상의 AI 수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기존 노벨상은 미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블랙홀, 양자기술, 리튬이온 배터리 등 기초 연구에 주어졌다. 2024년에는 현재 증권시장을 포함해 모든 사람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AI다. 경기침체, 기후온난화, 전염병, 자연재해 등 인류의 난제를 타개할 핵심기술, 기초과학으로 AI를 지목했다. 노벨상을 2개 분야 이상에 걸쳐 받음으로써 AI가 모든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최근까지 AI는 투자규모 대비 시장을 주도할 서비스를 내놓지 못했다. 실제 가치보다 과대 평가됐다는 거품론이 있다. 노벨상 수상은 AI가 인류의 미래라는 방향성과 가능성을 명확히 인정하고, 잠재력에 비춰 AI거품이 필요하면서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확인한 셈이다. AI생태계 종사자에게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덜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정신적, 이념적 인프라를 제공했다. 경기침체 우려가 여전하지만 AI혁신에 페달을 다시 밟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홉필드는 미국 프린스턴대, 힌턴은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허사비스와 점퍼는 구글 딥마인드 CEO와 연구원이다. 힌턴 교수의 구글 경력이나 일리야 수츠케버 등 제자의 오픈AI 창업 등 활동을 고려하면 미국 대학과 빅테크 기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봐야한다. AI기술 연구의 혁혁한 공로가 그들에게 있다는 현실을 정면으로 인정한 셈이다. AI의 발전과 미래는 유럽, 아시아가 아니라 미국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다. 미국 이외 국가가 주장하는 AI주권론은 강력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모든 국가가 AI 기술혁신으로 국가 개조를 선언하고 있다. 모든 기업이 AI를 자신의 핵심사업에 결합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아직까진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에 그치고 있다. 고객이 재미를 넘어 생업을 위해 관심을 가질 서비스가 많지 않다.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확신을 갖고 사람의 실생활에 스며드는 AI서비스를 만들어 내놔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에 힌턴이 포함된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AI 발전이 예상보다 매우 빠르고 위험도 급속도로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안전을 위해 AI발전에 속도조절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번 노벨상은 AI 기술혁신을 통해 미래를 발전시킬 과제와 위험을 통제해 안전을 확보해야 할 과제를 함께 주고 있다. AI 활용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인간이 AI와 공존하며 미래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할 핵심 교훈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