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없는 인간'. 유비소프트의 수익화 디렉터 스티비 차사드(Stevy Chassard)는 최근 링크드인(LinkedIn)에 올린 글에서 자사의 게임 및 업계를 비난하는 게이머들을 위의 표현을 빌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고 역겹다 평했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비판을 넘어 고객의 인격 자체를 공격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에 유비소프트와 같은 업계 내 성공한 게임 기업 내 임원이 고객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때 게임 업계를 선도하던 기업이 어떻게 고객과의 소통을 잃고,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유비소프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 다른 게임 산업의 거인으로 군림해 온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역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올해 초, 블리자드는 최소 6년간 개발해 온 신작 '오디세이' 프로젝트를 소유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취소했다. 관련해 미래 성장에 가장 유망한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MS의 발표가 있었지만 UCLA 대학생 두 명에서 시작해 오로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들인다는 기존의 블리자드만의 철학에서 벗어난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회사가 내부의 갈등으로 게이머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창의적 자율성을 더 이상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두 사례는 각기 별개의 상황들로 보일 수 있지만, 게임 산업 내 거대 기업들이 직면한 깊은 위기의 징후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유비소프트는 최근 몇 년간 대작 게임들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스타워즈 아웃로의 매력 없는 캐릭터 디자인, 어쌔신크리드 프랜차이즈의 식상한 자기 복제, 대작 영화 '아바타' 게임화의 실패 등을 경험해 왔다. 블리자드도 마찬가지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구독자 수 감소, 오버워치 2의 부진한 성과, 그리고 100명 이상의 개발자를 투입했던 오디세이 프로젝트의 취소 등으로 연이은 실패를 겪고 있다 할 수 있다.
두 회사 모두 한때 혁신적인 게임을 선보이며 게임 업계를 선도하던 기업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현 상황으로 이끌었을까? 그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거대한 성공'에 있다. 유비소프트의 어쌔신크리드 시리즈는 2007년 첫 출시 이후 1억50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출시 1년 만에 500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2010년에는 120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구독자 수를 달성했다. 이러한 폭발적인 성공은 두 회사에 엄청난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회사의 정체성과 의사결정 과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했다. 성공으로 인한 조직의 복잡성 증가는 기존의 의미 구조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들을 야기해 창의성과 게이머 중심의 가치관이 수익성과 주주 가치라는 압력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 기자인 제이슨 슈라이어(Jason Schreier)는 최근 발표한 그의 책 '플레이 나이스(Play Nice)'에서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단순한 게임 이상의 의미, 즉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회사를 세웠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거대한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블리자드는 해당 성공 이후, 남성 중심의 문화, 부서 간 협력 부족, 그리고 액티비전과의 합병 후 기업가 정신의 유입으로 인해 조직 내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분석했다.
기업의 성공은 자주 높은 판매량과 수상 이력으로 평가되지만, 성공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장과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지속적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과거의 성공을 반복하려는 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는 단순히 제품과 수익 모델을 바꾸는 것을 넘어, 회사의 정체성과 의사결정 과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블리자드와 유비소프트는 창의성과 혁신을 통해 성공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그 성공이 지속적인 변화와 도전을 수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성공을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두 기업 모두 창의성과 유연성을 회복해야 하며, 내부적으로 자율성과 위험 감수 문화를 다시 활성화해야 한다. 블리자드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자율성을 다시 부여하고, 유비소프트는 게이머 경험과 게임의 독창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 또, 외부 이해관계자인 유저들과의 신뢰 회복과 소통 재구성도 필수적이다. 피드백을 단순한 비난이 아닌 변화의 계기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조직과 제품의 방향성을 조정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두 기업이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경영적 실패가 아니라, 과거의 성공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성공의 재정의는 내부적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