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이 명언은 오늘날 정부 연구개발(R&D) 평가시스템 혁신의 핵심을 관통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로 불리며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세계적 기업 아마존의 성공 비결은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다. 아마존은 고객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제품 추천 시스템을 개발했고, 이는 급격한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구글은 데이터 기반 인사관리 시스템 '피플 애널리틱스'를 통해 직원들의 업무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성 향상과 이직률 감소를 이뤄냈다. 이처럼 데이터 기반의 평가와 의사결정은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정부 R&D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과학연구의 과학화(Science of Science)' 프로그램을 통해 R&D 투자의 영향력을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연구 자금의 효율적 배분과 혁신적 연구 촉진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 속에서, 우리의 정부 R&D 평가시스템도 혁신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역량 있는 연구기관을 선별해 투자를 집중하는 것이 국가 산업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되면서 R&D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정부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파급력 있는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평가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정부 R&D 과제를 수행할 연구기관의 선정은 주로 평가위원들의 지식과 경험, 전문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평가위원이 R&D 신청기업의 객관적 역량수준을 잘 알고 있으면 정성평가를 잘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평가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신청기업의 실적과 역량이 동일 업종, 유사 규모의 타 기업과 비교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 R&D 과제를 통해 혁신적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기술개발 역량과 뛰어난 사업화 잠재력을 동시에 갖춘 연구기관을 제대로 선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정부 R&D 프로세스에도 데이터 기반의 평가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R&D 신청기업의 역량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미래 성장 잠재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이하 산기평)은 고역량을 갖춘 R&D 수행기업을 보다 객관적이고 입체적 기준으로 선정할 수 있도록 '데이터 기반의 평가지원시스템'을 개발해 올해 산기평 신규과제 선정평가에 전면 도입했다.
매출액, 영업이익, R&D 집중도 등을 알 수 있는 기업 공개정보와 기존 정부 R&D 과제 성과정보를 기반으로 27개의 혁신역량 지표를 도출했다. 이 지표들을 바탕으로 기업의 성장성, 수익성, 안정성, 혁신성 등을 판단할 수 있다. 또 R&D 신청기업의 기술개발 역량과 사업화 잠재 역량을 유사 업종의 기업군과 비교, 상대적 역량 수준을 평가위원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가독성과 편의성을 대폭 개선했다.
이러한 진단결과를 평가위원에게 제공해 보다 객관적이고 신뢰성 높은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 그리고 향후 정부 R&D 과제 평가 방식을 데이터 기반의 지능형 평가시스템으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산기평의 새로운 평가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있다. 평가위원들의 새로운 시스템 적응, 다양한 데이터의 지속적인 축적과 분석, 혁신역량 지표의 개선과 고도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실질적 역량을 갖춘 기업들이 제대로 평가받고 지원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나아가 정부 R&D 평가 패러다임의 전환은 초격차 혁신기술을 확보하고 미래 신시장을 선점하는 데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산기평이 이끄는 정부 연구개발 평가시스템의 혁신 노력이 우리나라 산업기술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시금석이 되길 기대한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원장·영남대 겸임교수 art@kei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