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대학들이 '각자도생'식 자구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서울대는 전국 의대 중 가장 먼저 의대생 휴학을 승인했다. 서울대 의대는 휴학 승인 결정권자가 총장이 아닌 단과대 학장으로 돼 있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15일 국정감사에서 “서울대는 종합화 이후에도 휴학 등 구체적인 학사 운영은 단과대에서 책임을 지는 구조”라며 “학생 피해를 최소화하고 집단 유급을 막을 필요성을 고려했다”고 답변했다.
교육부는 서울대의 결정이 전국 의대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교육부는 11일 의대가 있는 대학 40개 총장 및 의대 학장 간담회에서 특별한 사유 없이 두 학기를 초과하는 연속 휴학 제한 규정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강원대는 최근 학생 휴학 승인권자를 학장에서 총장을 변경했다. 의대 교수와 의대생들은 “총장의 독단적 결정”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휴학 승인권자 변경을 위해서는 학칙 개정이 필수적이지만 교무회의 등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것이다.
다른 대학들은 상황을 관망하면서 자구책을 구상 중이다. 지역 A대 총장은 “교육부가 말한 3월 복귀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휴학 승인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복귀를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학생들의 휴학 승인을 하지 않는 것만이 답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B대 총장은 “규정상 각 단과대에서 휴학을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해놨지만, 이번 사안은 특수 상황이라 휴학을 결정하게 되면 대학 본부와 협의하게 돼 있다”며 “아직 의대 쪽에서 휴학 승인을 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라 두 학기 이상 휴학 제한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수도권 C대 총장은 “교육부 지침에 따라 휴학 제한을 고려하기보다 당장 내년 의대 수업의 파행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며 “11월까지라도 사태가 해결된다면 1학기 수업만이라도 방학을 활용해 압축적으로 하는 방식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총장들은 근본적인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호소했다.
C대 총장은 “의대생들도 올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다만 내년 의대 정원만이라도 조정해서 점진적으로 확대했으면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이런 내용을 교육부에 여러 번 전달했지만, 교육부·정부·여당 입장이 각각 달라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역 D대 총장은 “이 문제는 대학 수준에서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부가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서 “결국 본질은 의대 정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다 내려놓고 원점에서 대화에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놨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