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플랫폼 규제 법안에 대해 우리나라 디지털 시장 특성과 맞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지배적 플랫폼 기준과 대규모유통업법으로의 편입 등은 국내 플랫폼 사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평가했다. 그러면서 플랫폼이 파생한 생태계와 고유성을 고려한 법안 논의를 촉구했다.
22일 플랫폼법정책학회와 국회입법조사처가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플랫폼 규제 법안의 주요 쟁점과 전망' 세미나에 참석한 학계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9월 발표한 '플랫폼 독과점 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 추진방향'이 우리나라 디지털 시장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호영 한양대 교수는 공정위가 제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규제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별도 요건 없이 점유율 기준을 상향하고 이용자 수 기준을 추가해 극히 소수의 플랫폼만 기준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의 접근법으로는 △기존 경쟁법 집행 수단의 개선 △새로운 경쟁법 수단 확보 △부문별 사전 규제 마련 등 3 가지를 꼽았다. 그 중 독일 경쟁제한방지법(GWB) 개정과도 같은 플랫폼을 염두에 둔 별도의 경쟁법 규율을 마련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했다. 기존 경쟁법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부분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경쟁제한방지법은 정성적 고려요소를 제시하면서 경쟁당국에게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한다.
이 교수는 “통상 경쟁법은 특정 단위의 시장을 분석하는데, 이는 온라인 플랫폼이 다양한 서비스로 확장하는 특성을 고려하기에는 취약하다”며 “온라인 플랫폼이 구축하는 생태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전 규제 필요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우리나라 디지털 시장이 경쟁법적 사후 규제로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독과점 돼 있는지, 사전 규제의 목적이 명확한지, 문제된 행위가 본질적으로 경쟁 제한적인지, 사전 규제를 통해 법 집행의 효율 및 신속성을 실현할 수 있는지 등을 선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짚었다.
사전 규제의 조건으로는 △규제 당국이 예상되는 위험의 내용과 정도, 시정 수단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예측 능력을 갖출 것 △언제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 유형일 것 △입법 기술적으로 명확히 위반행위 유형을 기술할 수 있을 것 등을 꼽았다.
이 교수는 “경쟁법 및 경쟁 당국은 활발한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디지털 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쟁 제한적 행위를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규제해야 한다”며 “규제가 경쟁 제한적이라면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영국 한신대 교수는 경쟁법적 관점에서 공정위의 공정거래법에 대한 종합적·체계적 접근이 미흡하다고 짚었다. '플랫폼 사업자'라는 용어가 등장한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와 티메프 사태 등 특정 이슈에 따라 규율 방향성이 쉽게 변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시장 환경·거래 현실 전반의 변화에 대한 대응 못지 않게 특정 문제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 동의한다”면서도 “정부 입법 무게를 생각하면 명확한 방향성과 구체성이 필요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정 대상이 되는 바탕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정위의 대규모유통업법이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 규율을 위한 바탕 법령으로 최적인지, 이를 통해 적절한 플랫폼 규율이 가능할지, B2B 거래 문제해결을 위한 입법 시 어려움이 발행하지 않을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공정위가 이같은 사안을 충분히 고려했는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위한 법률 제·개정에 대한 효과 또한 분석했다. 별도 법률을 제정할 경우 온라인 플랫폼에 초점을 둔 경쟁 규범을 마련했다는 상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반면, 기존 규범체계와의 조화 및 정합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공정거래법 개정 시에는 디지털 경제 전반의 변화에 대한 모법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전부 개정의 부담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공정거래법 개정과 별도 법률 제정을 섞는다면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고 규제에 대한 균형적 고려가 가능하지만 종합적 판단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짚었다.
유 교수는 “새로운 규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경쟁규제와 혁신·성장의 관계에 대한 균형적 시각이 필요하다”며 “기존 규범 체계가 충분히 작동 가능한지에 대해 다각적 검토 또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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