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게는 수십톤에 달하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건설 현장을 누비는 중장비는 그 자체로 공학기술의 결정체다. 여기에 로봇과 소프트웨어(SW), 사물인터넷(IoT) 등 스마트 기술을 융합해 생산성과 에너지 효율을 높여 혁신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부산에 본사를 두고 김해 공장에서 설계와 생산을 하는 레디로버스트머신. 볼보에서 10여년간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전자유압 상용화의 일등공신 역할을 한 정태랑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는 유압 실린더에서 버려지는 에너지에 주목하고 스타트업을 차려 본격적인 개발에 뛰어들었다.
현존하는 기술 중 유압 실린더는 단위 체적당 가장 큰 힘을 낸다. 같은 힘을 전기 모터로 구현하려면 중장비 못지않은 크기의 초대형 모터를 동원해야 한다. 굴착기와 같은 건설기계, 트랙터 등 농기계, 초대형 크레인까지 힘깨나 쓴다는 중장비가 모두 유압 실린더로 구동되는 이유다.
사람 팔의 상박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굴착기의 붐(Boom)은 내릴 때 엔진 동력을 이용한다. 기존 굴착기는 이 때 발생하는 유압 에너지를 모두 유압 탱크로 버렸다. 레디로버스트머신은 붐을 내릴 때 쓰는 엔진 동력을 중력으로 대체하고 유압 탱크로 버려질 에너지를 회수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스마트 에너지 회수 시스템'으로 구현했다.
굴착기 엔진과 메인 펌프가 심장이고 붐이 팔이라면 두뇌 역할을 하는 SW도 빼놓을 수 없다. 레디로버스트머신의 스마트 에너지 회수 시스템은 굴착기에 기계적으로 결합돼 연동하지만 모든 제어는 스마트폰 앱으로 이뤄진다. 앱에서 '에코 모드'를 선택하면 회수한 에너지를 엔진 보조 용도로 재사용해 연비를 높이고 '파워 모드'를 선택하면 붐을 들어올릴 때 에너지를 추가 투입해 더 강하고 빠르게 움직이게 한다.
장비 위치와 축적한 에너지양, 연비를 얼마나 절약했는지도 앱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밸브나 센서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진단 정보를 제공해 장비 오류를 신속하게 바로잡는 데 도움을 준다. 앱에서 수집한 데이터는 클라우드 서버에 모이고 관리자가 장시간 장비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어 유지관리에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레디로버스트머신은 단순히 스마트 에너지 회수 시스템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독 모델 등을 도입해 사업 모델을 다각화하는 전략을 구상 중이다. 나아가 장비에서 수집한 데이터에 가치를 더하고 이를 통해 장비 운용 주체에 또 다른 혜택을 제공하는 플랫폼 회사가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도 세웠다.
정태랑 대표는 “유압 실린더는 중력을 거스르는 모든 장비에서 향후 수십년간 대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건설기계, 농기계에 그치지 않고 항만, 항공 등 도전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면서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데이터가 전국 단위를 넘어 세계 단위로 모이게 되면 지금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해=노동균 기자 defros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