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심판론에 연립여당 대표·각료도 줄줄이 낙선
여성 당선자는 역대 최다 73명…투표율 53.84%로 2%P 하락
지난 27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이 15년 만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일본 정계가 일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다.
28일 교도통신과 NHK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191석을 차지했으며, 공명당의 의석수는 24석에 그쳤다. 두 정당의 합계 215석은 중의원 465석 중 과반인 233석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다. 이는 지난해 연말 불거진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파문과 고물가에 따른 실질임금 감소 등으로 인해 민심이 여당에 등을 돌린 결과로 풀이된다.
자민당과 공명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놓친 것은 2009년 옛 민주당에 정권을 넘긴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자민당은 그동안 2012년부터 2021년까지 4차례 총선에서 매번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정치적 안정 기반을 구축해왔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 '정치 개혁'을 외치며 자민당 비자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기존 98석에서 148석으로 크게 약진했다.
우익 성향 야당인 일본유신회는 44석에서 38석으로 세력이 감소했으며, 국민민주당은 7석에서 28석으로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 자민당·공명당과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헌법 개정 세력'의 전체 의석수는 개헌안 발의 의석인 310석에 모자라는 297석이어서 향후 자민당이 추진하는 개헌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과반을 놓치면서 일본 정계는 연정 확대, 정권 교체, 이시바 총리 퇴임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둘러싸고 권력 투쟁과 세력 결집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시바 총리는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이며, 그의 독자 정책 추진 동력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일본유신회나 국민민주당 등 다른 정당을 포섭해 과반 의석 확보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 정당은 선거 전 연정 참여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반면, 야당은 산술적으로 결집을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지만, 많은 지역구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단일 총리 후보를 추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시바 총리는 개표 중 방송 인터뷰에서 “연립(연정 확대) 등 여러 방법이 있다”며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정책 실현을 위한 노력을 최대한 해야 한다”며 사임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다른 당과 성의 있는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며 “특별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해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를 전망하면서 대화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입헌민주당은 장기적으로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모색하며 정권 탈환 전략을 짤 것으로 보인다.
제2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이시이 게이이치 대표는 비례대표 대신 출마한 수도권 사이타마 14구에서 패배해 낙선이 확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그의 교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직 각료인 마키하라 히데키 법무상과 오자토 야스히로 농림수산상도 총선에서 낙선했으며, 이토 다다히코 부흥상은 지역구에서 패했지만 비례대표로 부활했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는 여성 당선자가 73명으로 기존 최다인 2009년의 54명을 넘어섰고, 여성 입후보자의 비율도 처음으로 20%를 돌파했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53.84%로, 직전 2021년 총선 투표율 55.92%보다 하락해 1945년 이후 세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한편, 이시바 총리는 향후 정치적 생존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권 기자 t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