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2심 세 번째 공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신중하게 이루어졌는지, 합병의 적절성을 검토할 시간이 충분했는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변호인 측에 “변호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합병이 더 신중하게 이루어졌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합병 TF가 2015년 4월 말에 구성되고 이사회가 5월 26일에 이루어지는데, 통상적인 회사가 합병을 하는데 이런 일정으로 할 수가 있냐”고 물었다. 또, 재판부는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합병에 대한 결론을 내라고 하는 것은 일정이 무리하거나 비현실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변호인 측은 “검토나 추진기간이 짧았던 것은 맞다”면서도 “삼성그룹 내에 계열사간 합병이라는 특수한 점이 있었고,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이 아니었다”고 답했다.
28일 서울고등법원 형사 13부가 실시한 이 회장 항소심 세 번째 공판이 끝나갈 무렵 재판부와 변호인 측의 질의와 답변이다.
이 회장은 재판 시작 약 14분 전 재판장에 도착해 굳은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공판 시작에 앞서 재판부는 검찰 측에 오늘 변론 내용에서 “어느 행위에 '부정한' 점이 있는지 명확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검찰 측 변론이 끝난 이후에는 두 기업 간 합병의 목적에서 어떤 부분이 부정한지 재차 물었다.
검찰 측은 “이 회장의 승계가 합병의 주된 목적이지만, 이를 숨긴 것이 부정하다”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사업적 이윤 추구 목적도 있었지만, 이 회장의 승계 목적이 더 컸음에도 이를 숨긴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 밖에 검찰은 두 기업 간 합병이 미래전략실의 주도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이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에 합병을 처음 제안했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검찰은 미전실이 먼저 합병을 검토해 하달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미래전략실은 삼성 그룹 계열사를 통괄하는 최고 권력기관이자 보좌기관”이라며 “미전실의 지시는 절대적이어서, 계열사가 미전실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구체적으로 따져 물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 검찰과 변호인 측은 합병 시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 수준이 적정했는지, 삼성물산이 손해를 보지 않았는지에 관해 공방을 이어나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주가는 저평가, 삼성모직의 주가는 고평가되어있을 때 부당하게 합병이 추진돼 물산이 손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제일모직 상장 이후 합병시기를 모색하던 중 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이 없어 서둘러 합병을 추진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변호인 측은 “공소장에 주가(합병비율)를 조작한 범죄사실이 없다”며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하도록 한 제도적 취지는 합병비율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또, 변호인 측은 “합병이 없었더라면 삼성물산의 3조 1000억원 손실은 당시 물산규모(시총 8~9조원)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며 “합병 이후 현재 삼성물산은 다른 건설사들의 주가에 비해 마이너스가 적다”고 말했다.
내달 11일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계약 이후, 합병성사 전 시기에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 등을 둘러싸고 변론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김신영 기자 spicyzer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