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1위 퀄컴과 반도체 설계 1위 Arm이 맞붙었다. Arm 핵심 고객사인 퀄컴이 반도체 독립을 시도해서다. 양사의 갈등은 지난 2017년 벌어진 퀄컴 대 애플의 반도체 소송과 닮아 주목된다.
◇ 脫 Arm 시동 건 퀄컴
퀄컴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를 만든다. 이 AP는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등으로 구성된다. 여러 칩이 구성된 형태여서 '시스템온칩(SoC)'으로도 불린다.
퀄컴은 AP를 만들 때 CPU 설계를 Arm에 의존했다. 스냅드래곤 첫 제품부터 Arm IP(코어텍스 코어)를 사용한 것이다. Arm은 모바일에 적합한 저전력 반도체 설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터라, 여러 반도체 회사들이 Arm과 협력했다.
그러던 중 2021년 퀄컴이 14억 달러(약 1조9173억원)에 '누비아(Nuvia)'를 인수하면서 Arm과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비아는 애플에서 SoC를 개발한 인력들이 세운 회사다. 당초 데이터센터용 CPU를 개발했으나, 퀄컴에 인수된 이후 PC·모바일·자동차용 CPU로 방향을 전환했다.
누비아는 CPU 구조 설계를 독자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CPU와 소프트웨어 간 통신 방법에 있어서는 Arm 아키텍처(ISA)를 사용하지만, 물리적인 설계에서는 Arm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자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퀄컴이 누비아를 인수한 것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되면 제품 경쟁력과 수익 모두를 잡을 수 있다. 설계 자유도가 높아져 전력 효율에 방점을 둘 지, 성능에 초점을 맞출 지 의도에 맞게 최적화를 하기 쉬워지고 동시에 라이선스·로열티 비용을 줄여 수익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 Arm, 퀄컴 CPU 폐기 주장
퀄컴은 앞서 GPU와 NPU도 자체 개발한 바 있어 CPU는 마지막 퍼즐과 같았다. 누비아의 CPU 개발 성공은 퀄컴에 날개가 됐다. 퀄컴은 스마트폰 AP에 그치지 않고, 노트북용이나 차량용 프로세서로 자체 개발 CPU를 확대, 적용했다.
Arm에는 비상이었다. 스마트폰 AP 1위로 Arm 핵심 고객인 퀄컴이 독립을 시도해서다. Arm은 퀄컴이 누비아를 인수하자 재계약을 요구했다. 계약 주체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응하지 않자 Arm은 2022년 소송을 제기했다. 퀄컴이 누비아의 라이선스 계약을 승계할 수 없다며 누비아가 설계한 CPU 폐기를 요구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22일 퀄컴과의 라이선스 계약 해지도 통보했다. 앞서 제기한 소송의 첫 재판이 12월 열리는데 이를 앞두고 꺼낸 압박 카드로 풀이된다. Arm은 성명을 통해 “퀄컴이 라이선스 계약을 반복적으로 위반해 이를 시정하거나 계약 종료에 직면하도록 요구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12월 재판에서 승소할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Arm과 퀄컴 간 계약 해지는 60일 이후 실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퀄컴은 Arm 반도체 IP를 모두 쓸 수 없게 된다. 물리적 설계를 위한 IP뿐만 아니라 CPU와 소프트웨어 간 통신을 정의한 ISA까지 포함해 최악의 경우 퀄컴이 AP를 출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초래한다. Arm ISA는 모바일에서 사실상 표준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이다. 퀄컴도 성명을 내고 “Arm의 계약 해지 주장은 근거 없는 행위로 법적 절차를 방해하려는 시도”라며 “(재판을 통해) 계약에서 보장된 권리를 재확인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명상이냐 극적 합의냐
12월 재판의 쟁점은 Arm과 누비아 간 체결했던 라이선스 계약 조건에 대한 해석이다. Arm은 퀄컴이 누비아를 인수했더라도 별도 법인이기에 또 다른 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퀄컴은 기존 라이선스 계약 승계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양측 입장은 첨예하지만 모두 라이선스 계약 해지 시 득보다 실이 커 결국 적정 수준에서 합의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 라이선스 계약 해지가 이뤄질 경우 Arm은 큰 폭의 매출 하락을, 퀄컴은 사업 지속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퀄컴은 Arm의 연간 매출에서 약 10% 비중을 차지하는 대형 고객사이고, Arm ISA는 퀄컴보다 먼저 CPU를 내재화한 애플도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사용 중이다.
과거 라이선스 분쟁을 보더라도 소송이 장기화될 가능성은 적다는 전망이 나온다. 2017년 애플이 퀄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법적 분쟁이 그 예다. 퀄컴이 모뎀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높은 로열티를 부과해왔다며 시작된 소송은 세계 각국에서의 특허 분쟁으로 확전됐으나 실제 2019년 재판 공개변론 첫날 양사 합의로 종결됐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