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반도체 패키징 기술이 차세대 반도체 구현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한국은 해외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생태계가 빈약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부장 생태계를 강화하고 기술 혁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박승배 뉴욕주립대 교수(미국 뉴욕주 전자패키징연구소장)는 5~8일까지 부산에서 열린 패키징 학술대회 'ISMP-IRSP 2024'에서 반도체가 이종결합(HI)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면서 패키징 업계 생태계 변화를 촉구했다.
이종결합은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 같이 기능과 역할이 다른 반도체를 결합하는 기술을 뜻한다. 마치 하나의 반도체인 것처럼 패키징하기 때문에 반도체 성능을 끌어 올리고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손꼽힌다.
박 교수는 “반도체 업계가 직면한 열 관리·전력 소모 개선·수율 안정화 등 과제를 해결하려면 3차원(3D) 패키징이나 이종결합 등 차세대 패키징 기술로 갈 수 밖에 없다”며 “이를 위해서는 소부장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패키징과 관련한 소부장 생태계는 일본과 대만은 물론 미국에도 뒤쳐져 있다는 분석이다. 첨단 패키징 필수 요소인 기판부터 패키징 재료, 장비까지 해외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기판은 대만과 일본, 재료는 일본, 장비는 일본과 미국 등에 주도권을 내준 상황”이라며 “한국은 HBM과 일부 메모리에 국한된 첨단 패키징 외에는 혁신 솔루션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같은 패키징 기술 부족의 문제를 정부도 인식하고 기술 확보를 지원하고 나섰다. 내년부터 2031년까지 2744억원을 투입해 △칩렛 이종집적 패키징 △차세대 인터포저 △3D 패키징 기술과 관련 소부장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다만 첨단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기업을 넘어 국가대항전으로 확산하면서 더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과 첨단 패키징 관련 국책 사업을 분석한 박 교수는 “미국 역시 첨단 패키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대적인 투자에 들어갔다”며 “우리나라도 다양한 패키징 기술 연구와 혁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술대회에서는 차세대 패키징 기술에 대한 발표도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특히 반도체 유리 기판'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플라스틱 소재 대비 기판 변형을 최소화하고 매끈한 표면 덕에 미세회로 구현이 용이한 유리기판은 차세대 기판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다이닛폰프린팅(DNP)에서는 쿠라모치 사토루 펠로우가 유리기판(글래스 코어) 및 인터포저 기술을 특징을 소개하며 대형·고밀도·고속 전송 기판 시장에서 우위성을 강조했다. DNP의 유리기판 열역학 특성 분석과 신뢰성 검증 결과도 공유했다.
유리기판 가공 분야 국내 벤처인 레이저앱스는 유리 기판 최대 난제인 미세 균열(크랙)과 이물(파티클), 가공 후 공정(연마)을 해결할 기술을 제시했다. 전은숙 레이저앱스 대표는 “유리 내부에 녹는점(멜팅 스팟)을 만들어 절단하는 플라즈마 융해 방식으로 유리기판의 안정적 수율을 확보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학술대회에는 많은 학생들이 참석해 주목됐다. 전체 650여명 중 절반 이상이 학생으로, 첨단 패키징 분야 인력 양성의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반도체 패키징 산업도 인력난이 심한 분야인만큼 미래 인재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강사윤 한국마이크로전자및패키징학회 학회장은 “ISMP-IRSP 2024는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됐을 뿐 아니라 국내외 패키징 전문가와 차세대 인재들이 함께 미래 기술을 논의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라며 “한국 반도체 패키징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