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권의 에듀포인트]〈39〉고교학점제와 수능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며칠 전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났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수능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정시에 집중할 지, 수시 논술 시험을 준비할 지 발빠르게 움직인다. 평가원은 국영수는 대체로 평이했고 탐구는 난이도가 높았다고 분석한다. 이는 학생들 체감으로는 수능만을 집중적으로 준비한 N수생 이야기다. 학교 생활을 하는 고3 학생에게는 국영수도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N수생이 등급 컷 기준을 높여, 고3학생 상당수를 뒤로 밀어낸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한가지 우려되는 것이 있다. 내년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는 제도다. 학생 소질과 적성에 맞게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고교학점제가 현 대입 제도에서 본 취지에 맞게 운영이 가능할까.

마이스터고 등 특성화고를 제외하고는, 현실적으로 상당수 고등학생들은 좋은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한다. 수시 위주로 대학에 진학하는 영재고 등 특수목적고 학생을 제외한 일반고 학생에게는 수능 과목과 상관 없는 과목을 선택해 이수한다는 것은 쉽게 와 닿지 않는 이야기다.

더욱이 N수생 급증으로 고등학생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공부 기간을 극복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일찍 수능 준비에 나선다. 가능하다면, 고1부터 수능에 맞춰 선택 과목 및 영역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수능 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단적으로 '정보' 과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수능에 포함되지 않는 정보 시간은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학교에서는 자습 시간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자칫 고교학점제로 다양한 진로 탐색과 적성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기보다, 수능 준비를 위한 과목 선택으로만 활용될지도 모른다. 고교학점제가 수능 준비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더 우려되는 것은 2028학년도부터 적용되는 대입 개편안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2028학년도 수능부터는 영역별 선택과목 없이 통합형으로 시험을 보게 된다. 다시말해 모든 학생이 기존 국어와 수학 영역에서 선택과목 없이, 국어는 '화법과 언어' '독서와 작문' '문학'을, 수학은 '대수'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 시험을 봐야 한다.

탐구영역에서도 선택과목 없이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본다. 즉, 모든 학생은 사회탐구의 경제·정치와법·사회문화·세계사·동아시아사·한국지리·세계지리·생활과윤리·윤리와사상 과목이 통합된 통합사회와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을 통합한 통합과학을 모두 공부해야 한다.

2028학년도 수능을 보게 되는 현 중 3학년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이렇게 많은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데, 수능 외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수능 외 과목은 차치하더라도 많은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게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까. 결국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더라도, 학생들이 듣는 과목은 대부분 동일할 것이다. 수능 과목 말이다.

결국 고교학점제가 본 취지에 맞게 정착되려면, 현재 수능으로 대학 입학을 결정짓는 현 제도를 바꿔야 한다. 수능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하는 자격 시험으로 전환하고, 학생 선발은 대학 자율에 맡기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물론, 대학 자율로 학생선발을 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 문제는 그에 맞는 해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획일화된 제도로는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 대학 입학처장은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해 선발하는 현 대입 제도보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발하면 보다 더 다양한 인재를 선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방안이 학생들의 적성과 소질을 살릴 수 있게 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