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46〉신뢰자산 붕괴는 혁신을 그르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19세기 후반 인도에선 코브라에 물려 피해가 늘자 코브라를 잡아오면 현상금을 주는 정책을 폈다. 코브라 수가 줄어들다가 갑자기 늘었다. 이유가 뭘까. 사람들이 더 많은 현상금을 노리고 코브라농장을 운영했다. 현상금 지급을 중단하자 코브라가 풀려나 피해가 급증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이 지배했고 국민 신뢰가 없었다. 20세기 중반 중국은 참새가 곡식을 갉아먹는다며 박멸을 명령했다. 인민의 적극 참여로 많은 참새가 제거됐지만 참새 먹이였던 해충이 늘어나 흉년이 계속됐다. 맹목적 신뢰가 가져온 폐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주택담보대출 연체가 급증해도 주택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잘못된 신뢰를 준데서 비롯됐다.

신뢰는 누구나 규칙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기대와 약속이다. 교통신호가 빨간색이면 멈추고 파란색이면 건넌다. 지키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진다. 신뢰는 생명, 신체, 재산의 안전과 기업혁신을 위한 필수자산이다. 원시시대엔 다른 공동체와 전쟁을 하고 공동체 안에서도 싸움을 했다. 문명시대엔 조약, 법령과 계약이 전쟁과 싸움을 대체했다. 전쟁은 외교로 바뀌고 싸움은 정치로 순화됐다. 폭행, 사기, 채무불이행 등 법적 신뢰를 깨트리면 범죄와 계약위반이 됐다. 경제에선 신뢰 축적을 위한 시스템이 구축되고 고도화됐다. 실물, 금융시장의 법령, 규정, 약관과 자율규제 등 거래질서를 갖췄다. 온라인에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쇼핑몰, 음식점, 뉴스기사에 붙는 이모티콘, 평점, 댓글과 후기가 신뢰를 더했다.

그림작가 이소연 作
그림작가 이소연 作

신뢰시스템을 구축하면 배려, 소통, 협력을 기반으로 거래가 원활하고 위기극복, 분쟁해결이 원칙과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기업도 불신을 제거하고 신뢰를 높인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성공한다. 거짓 신뢰의 말로는 비참하다. 제휴업체, 소비자를 교묘하게 종속시키고 착취하는 다단계 또는 플랫폼 사업이 그것이다. 티몬, 위메프 사태처럼 신뢰시스템은 신뢰 축적을 멈추는 그 순간 무너지기도 한다. 대다수 플랫폼은 그렇지 않다. 생태계 참여자의 신뢰를 높여 성장한다.

무엇을 신뢰해야 하는가. 공동체가 목표로 하는 핵심목적과 가치다. 국가사회만 아니라 산업, 시장 생태계에 봉사한다. 그것을 체계화한 것이 신뢰시스템이다. 핵심목적과 가치의 공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와 의사결정, 건전한 실패와 실수에 대한 배려, 탈락이 아닌 성장을 위한 지원과 교육에 투자한다. 신뢰 축적과 고도화의 기반은 누적적으로 강화된다.

신뢰가 붕괴되면 어떻게 될까. 좋은 신뢰가 비운 자리에 나쁜 신뢰가 들어선다. 기업도 인사, 재무 등 지원부문에 보상이 집중되면 수익원인 영업부문의 신뢰를 잃기 쉽고 쇠퇴한다. 친인척, 동문이나 범죄이익으로 연결된 인맥이 공동체의 목적과 가치를 훼손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대체수단 마련에 많은 노력을 하지만 효과가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950달러 미만의 절도는 경범죄로 본다. 교도소 수용공간이 없어서다. 대형마트, 보석상, 휴대폰판매점 등 곳곳에서 도둑이 활개를 친다. 기업과 인재가 캘리포니아를 떠난다. 신뢰가 붕괴된 도시는 죽고 범죄는 제도가 된다. 기술, 산업만 아니라 문화, 지식, 가치가 무너져 내린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어떤가. 디지털로 존재하는 무형자산이다. 가치등락폭이 크다. 신뢰가 낮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비트코인 현물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달러화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 등 암호화폐가 관리될 수 있다는 신뢰를 줬다. 2024년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는 국가차원에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자산비중을 높이고 규제완화 등 신뢰시스템을 쌓겠다고 선언했다. 신뢰시스템이 구축되면 암호화폐를 활용한 산업, 시장 및 거래 혁신이 가능하다.

건전한 신뢰자산 축적은 혁신의 기폭제가 되고 위기에 직면해도 회복탄력성이 높다. 기술이 좋아도 신뢰가 없으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신뢰자산은 인적, 물적 자산에 우선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