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 저희가 맞은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녹록치 않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겠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최근 불거진 삼성 위기론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그동안 위기설을 타개할 수 있는 미래 방향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으나 법정에서 처음으로 심경을 밝힌 셈이다.
이날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에 대해 지난 1심과 동일한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가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한 터여서 이르면 내년 1월 말 열리는 2심 최종 판결에 이목이 집중된다.
이재용 회장은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된 후 4년여간 사법 리스크를 겪고 있다.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부문의 실적 악화와 기술 경쟁력 부진으로 위기론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어 사법 리스크에 대한 부담도 더 커졌다.
삼성 내부는 2심 판결에 따른 사법 리스크 지속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은 경영권 승계 지원을 목적으로 뇌물 제공 혐의를 받은 국정농단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9년 이상 사법 리스크를 겪고 있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1심부터 3심에 걸쳐 구속(2017년 2월 1심)-석방(2018년 2월 항소심)-재구속(2021년 1월 상고심)을 겪었다. 재구속된 지 7개월 후인 2021년 8월 가석방됐고 이듬해 형기가 만료됐다. 광복절 특사로 복권도 완료돼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른 5년간 취업제한 조치가 풀리면서 경영 활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삼성은 불투명한 미래 전략, 책임지지 않는 조직문화, 미래 동력 확보 차원의 초대형 인수합병 부재 등 미래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을 안팎으로 거세게 받고 있다.
이에 삼성 안팎에서 이재용 회장의 '위기돌파 메시지'에 주목했지만 예상과 달리 이 회장은 별다른 메시지를 내거나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위기마다 새로운 미래사업 전략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위기를 돌파해 나갔던 과거와 전혀 다른 분위기다. 조만간 단행할 연말 정기인사에 이 회장 의중이 반영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만 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이재용 회장의 최후변론은 삼성의 미래 전략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한 가운데 처음 심경을 밝힌 것이어서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재용 회장은 “항소심 재판은 제 자신과 회사경영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삼성에 대한 국민의 높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많은 시간 자책했다”고 말했다.
또 최근 삼성 안팎에서 불거진 위기론에 대해 “많은 걱정과 응원을 접하면서 삼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며 “부디 제 소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항소심에 대한 검찰 구형이 이뤄짐에 따라 내년 초 열릴 2심 최종 판결에 이목이 집중된다. 2심 판결은 내년 2월 3일 이뤄진다.
2심 최종 판결이 상고심으로 이어질 경우 삼성의 사법 리스크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총수 재구속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 경영과 위기타파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질 여지가 있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최근 최악의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사법 리스크부터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전문경영인 체계가 잘 돼 있더라도 그룹 차원의 대형 인수합병 등 굵직한 의사결정에서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