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 10곳 중 7곳 가량이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하거나, 아예 투자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 대상으로 '2025년 500대 기업 투자계획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기업의 56.6%가 내년 투자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투자계획이 없다는 응답도 11.4로 나타났다. 계획을 수립했다는 응답은 32.0%였다.
투자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는 기업 비중은 지난해 말 조사(49.7%)보다 6.9%P(포인트) 늘었다. 투자 계획 없음으로 응답한 비중은 지난해(5.3%) 대비 6.1%P나 증가했다.
투자 계획 미정 기업은 △조직개편·인사이동(37.7%) △대내외 리스크 영향 파악 우선(27.5%) △내년 국내외 경제전망 불투명(20.3%) 등을 이유로 꼽았다.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의 내년도 투자계획 규모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59.0%)'이 가장 많았다. 올해보다 '감소'할 것이란 응답은 28.2%로, '증가'(12.8%)를 상회했다. 지난해 같은 질문에서는 증가(28.8%)가 감소(10.2%)보다 많아 대조를 이뤘다.
투자를 줄일 계획이거나 투자 계획이 없는 이유로 △2025년 국내외 경제전망 부정적(33.3%) △국내 투자환경 악화(상법 등 지배구조 규제 강화 등, 20.0%) △내수시장 위축 전망(16.0%) 등을 지목했다.
내년 설비투자 기조에 대해 전체 응답기업의 77.8%는 '기존 설비를 유지·개보수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답했다. '적극적으로 설비를 늘리겠다'는 응답은 18.9%에 그쳤다.
한경협 관계자는 “양적 측면에서 내년도 투자를 늘리지 않겠다는 기업이 대부분(87.2%)이고 질적 측면에서도 소극적인 유지·보수를 택한 기업이 다수(77.8%)”라고 해석했다.
응답 기업은 내년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칠 리스크로 △글로벌 경기 둔화(42.9%)를 가장 많이 꼽았다. △고환율·물가상승 압력(23.0%)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공급망 교란 심화(13.7%)가 뒤를 이었다.
국내 투자를 저해하는 가장 큰 애로는 △설비·R&D투자에 대한 세금·보조금 등 지원 부족(37.4%)을 가장 많이 꼽았다. △ESG(상법 등 지배구조, 환경, 사회) 관련 규제(21.3%) △설비투자 신·증축 관련 규제(입지규제, 인허가 지연 등, 15.0%)도 주된 애로 요인으로 언급했다.
국내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해 우선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는 △자금조달 등 금융지원 확대(21.0%) △법인세 감세·투자 공제 등 세제지원 강화(16.9%) △지배구조·투자 관련 규제 완화(15.3%) 등을 꼽았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기업 투자가 위기 극복의 열쇠가 돼 왔지만 최근 기업들은 투자 확대 동력을 좀처럼 얻지 못하고 있다”며 “경영 불확실성을 크게 가중시키는 상법 개정 논의를 지양하고 금융·세제지원 등 과감한 인센티브로 적극적인 투자를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