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AI기본법·반도체법·예산안까지…탄핵 정국에 민생법안 처리 '올스톱'

'준예산' 현실화되면 2년 연속 'R&D 예산' 삭감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 위한 핵심 법안도 줄줄이 지연

계엄 후폭풍으로 정치권의 탄핵공방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과 각종 민생법안 처리가 일제히 마비됐다. 사상 초유의 '준예산'(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제도)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여야 모두 시급성을 강조했던 인공지능(AI) 기본법과 반도체특법법·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 등의 처리도 불투명해졌다. 1% 저성장 늪에 갇힌 한국의 경제가 더 큰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다.

8일 정치권과 정부 당국에 따르면 677조 원 규모의 2025년도 예산안과민생 법안 처리는 사실상 올스톱됐다. 이미 법정시한을 넘긴 예산안의 경우 여·야·정 협의가 무기한 중단되면서 야당 자체 감액안으로 통과시키거나, 연내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8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국정 수습 방안에 대한 공동 담화문 발표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8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국정 수습 방안에 대한 공동 담화문 발표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이미 야당은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부결 후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무한 발의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라 탄핵정국이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대국민담화에서 야당에 내년도 예산안 확정을 위해 협조를 당부했다.

한 총리는 “비상시에도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과 그 부수법안의 통과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예산안이 조속히 확정되어 각 부처가 제때 집행을 준비해야만 어려운 시기, 민생경제를 적기에 회복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원식 국회의장님의 리더십 아래 여야협의를 통한 국회운영 등으로 경청과 타협, 합리와 조정이 뿌리내리길 희망한다”며 “정부가 먼저 몸을 낮추고 협조를 구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은 여당과의 협조 보다는 투쟁 강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탄핵안은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재발의할 예정이고, 부결된 김건희 특검법도 4번째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도 여야 합의 없이 야당 자체 감액안으로 통과시키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여야간 협상 교착이 장기화될 경우 초유의 준예산 편성까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준예산은 내년도 예산안이 12월 31일 자정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편성하는 임시 예산이다. 올해 예산에 준한 예산 집행만 이뤄진다.

이 경우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올해 14.8% 삭감된 예산안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정부는 올해 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부작용과 다양한 분야에서 나온 비판으로 인해 내년 예산을 전년 대비 11.8% 증가한 29조7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사실상 대규모 R&D 예산 삭감 이전 수준으로 원복시켜 놓은 것이다. 하지만 준예산 사태가 현실화될 경우 미래기술 개발 및 인재육성 등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법안들도 줄줄이 표류하고 있다. 당초 오는 10일 정기국회 마지막날 본회의에서 여·야가 합의한 AI기본법과 단통법 폐지안, 전력망확충법 등 민생법안을 처리하려 했으나 사실상 어려워졌다.

여당이 당론으로 추진 중인 반도체 특별법도 기약이 없어질 위기에 놓였다. 반도체 기업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를 예외하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으나 여야간 극한의 대치상황에서 합의처리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 외에도 최고세율 인하 등 내용을 담은 상속세제 개편안, 정산 주기 단축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 시장이 주목하는 민생 법안 처리도 불투명해졌다.

한동훈 당 대표는 이날 대국민담화에서 “민생을 챙기고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맡고 있는 기장 중요한 당면 목표”라며 “당 대표와 국무총리간 회동을 정례화해 시금한 국정 현안을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해서 한 치의 국정 공백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