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무엇부터 하는가. 미국 주요 시장의 경제지표가 어떻게 됐는지 찾는다.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본다.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엔 관심이 없다. 미국 기업 엔비디아, 테슬라의 주가가 궁금하다. 한국은행 총재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제롬 파월 의장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한국 기획재정부 장관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무슨 일을 했는지 찾는다. 나는 미국 사람인가, 한국 사람인가.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의 AI정책과 국내 AI기업의 상품엔 관심이 없다. 미국 정부의 AI정책과 오픈AI, 구글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다. 우리나라 AI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유럽연합(EU) AI법은 AI 위험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 명백한지에 따라 4단계로 나눠 허용 여부와 규제 수준을 정한다. 27개 회원국이 뭉쳐 자기들만의 단일 시장을 만들고 미국 등 AI열강에게서 EU시장을 지키려 한다. 중국은 미·중 갈등 격화와 경기침체 속에서 힘을 다해 AI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규제강화나 완화의 경직적인 정책을 지양하고 시장에 맞게 탄력적 대응을 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AI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어떤 내용일까. AI 진흥을 위한 정부 기본계획, 인공지능위원회 설치, AI정책센터와 AI안전연구소 도입, 표준화, 전문인력 양성, 기능적·물리적·지역적 집적화, 윤리 확립, 고영향 또는 생성형 AI 제품 및 서비스 표시와 고지의무, 안전성·신뢰성 확보 조치, 자료제출·조사·시정조치에 관해 정하고 있다. AI법을 그대로 실행하면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AI강국이 될 수 있을까. AI법은 정부의 다른 진흥법과 비교해 볼 때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
AI법에 누락된 부분은 없을까. 국민의 폭발적 참여와 역량을 이끌어내고 외국기업 중심의 판을 뒤집을 '강력한 한방'이 보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직전 조선시대 말기와 비교하면 어떤가. 당시 우리 선조들도 가만있진 않았다. 갑신정변, 갑오경장, 광무개혁 등 부국강병을 위한 많은 정책과 노력이 있었다. 왜 실패했을까. 백성의 전폭적인 지지와 참여가 없었다. 그들만의 개혁에 그쳤다. 산업화, 정보화시대엔 정부 주도로 '나를 따르라'는 방식으로 기업, 국민을 독려해 경제가 발전했다. 지금은 다르다. 정부와 기업만으로 AI강국이 될 수 없다. 높은 교육을 받고 역량을 갖춘 국민의 시대다. 정부가 시킨다고 따르지 않고 정부가 앞선다고 따르지 않는다. 의심하고 비판한다. 이해되고 납득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국민의 열망과 폭발적인 능력 발휘가 뒤따르지 않으면 AI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과거 기술문명 시대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범위 밖에서 살면 됐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쓰면 편리하지만 쓰지 않는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자가용 자동차를 가지고 있으면 편리하지만 없더라도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 된다. AI는 그렇지 않다. 고속도로만 남고 국도 등 모든 길이 막힌 세상과 같다. 이동하려면 누구나 고속도로에 올라타야 한다. 그것이 AI다. AI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
AI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호랑이가 죽지 않는 한 내려올 수도 없다. 다른 대안은 없다. 올라탔다면 과감하게 달려야 한다. 호랑이 등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살아남는다. AI라는 호랑이 위에서 즐겁게 누리며 사는 방법이 AI법이어야 한다. AI열강이 자본주의 첨병이 되어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획기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
AI법에서 국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논의하고 실행하는 공론의 장 'AI 정책 발안제'를 시행하면 좋겠다. 국민의 창의를 모아 'AI 백과사전'을 만들자. 국민의 폭발적 아이디어를 융·복합해 한국이 주도하는 '창의와 혁신의 AI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AI법의 사명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