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 대한민국 통신과 계륵

홍원빈 포항공과대학교 전자전기공학과 교수(한국전자파학회 국제상임이사)
홍원빈 포항공과대학교 전자전기공학과 교수(한국전자파학회 국제상임이사)

계륵은 소설 삼국지에서 먹어보면 별로 얻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한중(漢中) 지역을 닭의 갈비뼈를 빗댄 고사성어다. 삼국지에서는 한중 지역을 두고 전쟁을 벌이기 망설이는 대목에서 언급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통신 산업은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지난 수십년간의 노력으로 우리는 통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고, 세계 유수의 선진국과 여러 분야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상을 갖췄다. 필자는 선배 세대들을 향한 큰 감사함과 우리의 노력에 자부심을 가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도 밤낮으로 연구와 학업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지켜보며 후속 세대를 위해 어떠한 모습으로 대한민국 통신 분야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깃든다.

부끄럽지만 고백을 해보자면 필자는 통신의 미래 방향에 대해 정리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 원인은 코로나 시기를 전후로 더욱 불명확해진 통신 분야의 세계적인 흐름이다. 전례가 없던 현상으로 통신 분야의 지역, 세부 시장별 분열과 분할 현상은 현재 통합 전략 수립에 혼란을 주는 주요 요인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에서 5세대(5G) 이동통신이 현재 기대 대비 고전 중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최근의 현상을 들여다보면 이에 대한 종합적인 결론화, 일반화가 훨씬 어려워졌음을 깨닫게 된다. 일례로 최근 국내 기업들의 국내외 이음5G 사업 전개 등을 비롯한 다양한 돌파구와 희소식들이 존재하는 등 한마디로 현재의 정황을 형용하기 어려운 시기다.

신규 통신 제품들과 서비스는 이전 통신 세대 대비 기술적 마진이 훨씬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중국 등의 신흥 생태계 대두로 연구 개발의 난이도와 리스크는 크게 증가한 상황이다. 기술의 수준은 높아지고 코로나 이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에 따라 국내 산업계의 개발 원가는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목표 시장들의 무선 통신 유통 구조가 매우 다르다는 것도 큰 부담 요인이다.

해외에서의 5G 전개 양상 역시 지역마다 매우 다른 상황이다. 일본은 정부 주도로 지속적으로 5G 통신 인프라 생태계가 구축 중이며, 밀리미터파 역시 상용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전통적 통신 용도 외 일본은 국내 방송 사업의 변화에 의한 전혀 다른 수요가 발생했다. 인도의 경우 국내 주파수 현황에 따른 신규 무선 통신 수요가 급격히 발생하는 등 전세계에서 각기 다른 양상이 관찰되고 있다.

위성통신과 비지상통신(NTN)의 경우 현재 주요 선진국들 중심으로 화두며, 우리나라의 통신 분야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핵심 의제로 논의되고 있다. 올해 미국의 위성통신 기업들이 1년 동안 양산한 위성통신용 안테나 모듈의 출하량은 9억개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도 현재 위성통신과 비지상통신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고 우수한 성과가 매일 쏟아지고 있다. 최근 중국 출장 중 방문한 한 공과 대학교에서는 필자와 동일한 세부 전공의 교수가 해당 학과에 37명이 있었으며 해당 도시에는 유사한 규모의 대학교가 수십개 있는 상황이다.

우리보다 기술의 역사도 길고 자원도 많고 시장 창출 역량도 뛰어난 경쟁국들과 정면으로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대신 경쟁국들의 내부 사정상 추진하지 않은 영역, 또는 통신 분야에서 심도 있는 고민을 하지 않았던 출산율 감소, 노동 인구의 고령화, 기후 변화 및 탄소 중립 등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전통적 통신 분야와 다소 동떨어진 산업, 연구계, 학계와 공조를 통해 우리만의 차별화된 통신 산업의 계륵화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격변하는 국제 정세와 기술의 진화 속에서 현재 통신 분야의 분열과 분할은 대한민국 통신 분야가 세계 속에서 독특한 리포지셔닝울 이루는 기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통신 분야의 일부라도 대체 불가한 세계 속의 계륵으로 성장하기를 고대한다.

홍원빈 포항공과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한국전자파학회 국제상임이사 whong@pos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