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77〉비극과 논란 사이, 정보 사회의 책임을 돌아보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어제 발생한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사고는 비극이었다. 많은 이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고, 그 슬픔은 남겨진 가족들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이 비극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사고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사고 현장을 단독으로 취재한 MBC의 영상에서 '탄핵:817'이라는 문구가 화면에 노출된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고 이후 긴급회의를 열고, MBC의 사고 보도와 관련해 두 가지 심의 위반 사항을 지적했다. 첫째는 사고 현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방송한 점, 둘째는 방송 내용과 무관한 자막이 화면에 잠시 등장한 점이었다. 방심위는 이와 같은 사례가 재난방송 준칙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며, 모든 방송사에 심의 규정과 재난방송 준칙 준수를 요청했다. 그러나 일부 시청자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자막에 등장한 '817'이라는 숫자가 북한의 대남 공작과 관련 있다는 설명이 챗GPT를 통해 확인되었다며 음모론을 급격히 확산시키는 양상을 보였다.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정보 소비는 순간적인 반응과 즉각적인 피드백에 의해 지배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깊은 이해와 숙고의 기회를 놓치기 쉽고,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해를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번 자막 논란은 분명 최근의 사회적 불안과 신뢰 부족이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소비와 해석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

즉, 방송사고라는 표면적 사건이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정보 소비와 신뢰 체계에 내재된 문제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보의 객관성과 해석의 주관성이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 명확히 볼 수 있다.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교육학자 Gunther Kress의 멀티모달리티(multimodality) 개념은 이러한 정보 전달의 구조적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Kress는 메시지가 텍스트와 같은 단일 모드로만 전달되지 않고, 다양한 모드(이미지, 소리, 색상 등)의 조합을 통해 구성된 '모달 앙상블(modal ensemble)'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에서 자막, 영상, 그리고 당시 방송의 맥락은 대중에 의해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되었다. '탄핵 817'이라는 문구는 화면에 잠시 나타났지만, 일부는 이를 정치적 음모론으로 연결하며 확대 재해석했다.

챗GPT와 같은 AI 도구는 '817'이라는 단어를 북한의 대남 공작과 연결된 지령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해석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고, 일부 대중은 이를 기존의 정치적 불신과 결합해 더욱 강력한 음모론을 생성했다. 이는 기술적 오류가 디지털 맥락에서 어떻게 증폭되고 변형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다시 말해, 정보는 단순히 발신자의 의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신자가 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번 논란은 디지털 시대 정보 소비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정보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에서 신뢰 체계가 약화된 지금, 대중은 과도한 해석과 음모론에 휘말릴 가능성에 더 취약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AI와 같은 기술 도구가 제공하는 해석이 얼마나 대중의 이해와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지 재검토해야 함을 시사한다. 챗GPT와 같은 AI는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려는 의도로 설계되었지만, 그 해석이 특정 서사와 결합되거나 왜곡될 경우, 잘못된 정보 확산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이 대중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 논란은 단지 음모론과 기술적 오류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고는 우리가 정보를 어떻게 소비하고 해석하는지, 그리고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정보 해석에서 열린 질문과 비판적 검토의 태도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공론장을 재구성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고는 너무나 무거운 비극적 사안이다. 사고로 인해 생명을 잃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