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시간에 걸친 음악과 인생에 관한 강의를 들은 기분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데뷔 이래 26년이 넘게 최정상급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로 자리해 온 박기영인 만큼 음악을 대하는 그의 가치관과 사상, 태도는 범부에 불과한 기자가 함부로 추측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영역에 닿아있을 테니 말이다.
2024년이 저물어가는 12월,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가수 박기영과 만났다.
그의 26년에 걸친 음악 인생을 두 시간 남짓의 인터뷰만으로 모두 확인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지만, 그래도 박기영이 쌓아온 26년이라는 시간의 편린 정도는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박기영뿐만 아니라 음악 그 자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값진 경험이 됐다. 그 이야기들을 지금 풀어놓고자 한다.
◇박기영이라는 장르
사실 개인적으로 박기영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은 ‘박기영의 메인 장르’였다. 박기영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온 사람이라면 알 테지만, 데뷔 이래 그는 록, 발라드, 팝 등 가장 대중적인 장르는 물론이고, 힙합, 재즈, 블루스 심지어 크로스오버와 일렉트로니카까지 메이저와 마이너를 가리지 않은 음악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빈말이 아니라 트로트정도만 제외하면 거의 모든 대중음악 장르를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박기영은 "나는 그냥 다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다 해버렸다. 음악적 호기심이 많고 도전을 즐긴다. 장르에 음악가를 가두는 개념은 나와 맞지 않는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라고 음악적 신념에 대해 이야기 했다.
박기영이 이렇게 대답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에게 있어 장르는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며, 또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한 가지 방법에만 얽매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결국 본질은 ‘메시지의 전달’에 있기 때문이다.
박기영은 “사실 본질적으로 음악은 그냥 음악 딱 하나다. 장르라는 것 자체가 듣는 사람들이 구분 지으면서 생겨난 것이고, 하는 사람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앞으로 더 좋은 것들이 나오고, 그것이 자리를 잡으면 새로운 장르가 되는 것이다. 그럼 또 새로운 장르를 해보는 거다. 나에게 하나만 하라는 건 평생 맨날 김치볶음밥만 먹으라는 소리와 같다. 나는 취미도 음악인 사람이라서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우리가 흔히 ’대중음악‘이라고 명명하는 대부분은 흑인음악이 베이스다. 1900년대 초반에는 재즈가 주류였고 이 재즈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지역의 음악들을 끌어들여 다양한 음악유형을 탄생시켰다. 이제 재즈는 장르가 됐고 어떤 음악이 주류라고 정의하기 매우 어려운 시대다. 음악은 음악가의 선택과 대중의 요구에 따라 특정한 요소들이 유행이 되어 돌고 돌며 발전한다. 음악뿐만이 아니다. 가장 유행에 민감한 패션도 그렇고 거의 모든 대중예술이 비슷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그것들의 중심에는 결국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 음악은 이야기를 전하는 도구이자 메세지를 위한 방향이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명확한 메세지를 담기 위해 그때 그때 가장 잘 맞는 ‘음악이라는 옷’ 을 입히는 작업에서 장르라는 경계는 모호해진지 오래다. 음악, 문학, 영화 등의 대중문화는 그 안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적 표현의 옷을 입는다. 그래서 나도 나에게 필요한 걸 가져오고 있고, 그래서 ‘장르는 박기영’이라고 한 것이다. 나의 다양함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것이다. ‘때와 장소에 걸맞는 의복을 갖추는 것’과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박기영은 곡을 쓸 때, 작사를 먼저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는 “물론 나도 멜로디, 선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나도 장르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음악의 가장 큰 목적이 메시지라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내 곡 중에는 내 이야기가 아닌 팬들의 이야기, 혹은 전해들은 이야기도 많다. 그런 상황에 가장 적절한 옷을 입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를 먼저 쓴다. 내 곡 중에 ‘아네스의 노래’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헌정곡이다. 이창동 감독이 직접 쓴 시 ‘아네스의 노래’ 를 한 자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가사로 써서 작곡했다. 이 곡을 작업하면서 훈련이 된 것 같다. 가사를 먼저 쓰거나 이야기를 먼저 쓰고 나서 작곡하는 일이 많아졌다”라고 음악관을 밝혔다.
이런 ‘박기영이라는 장르’ 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앨범을 꼽자면 ‘Magictronica(매직트로니카)’다. 아무리 그에 어울리는 옷을 입힌다고 해도, 그 박기영이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멜로디 랩을 시도한 것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박기영 역시 ‘Magictronica’를 “정말 재미있었던 앨범”이라고 말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또 박기영 스스로의 만족감과 함께 팬의 입장에서도 ‘Magictronica’는 응당 관심을 가져야 할 작품이다.
베스트 앨범 ‘Love You More(러브 유 모어)’와 크로스오버 앨범 ‘The Classic(더 클래식)’과 함께 박기영의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음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중에서 온전히 신곡으로 채워진 앨범은 ‘Magictronica’뿐이다.
박기영은 “‘Magictronica’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한 것이다. 일렉트로닉이란 장르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기도 하고, 내가 일렉트로닉을 한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하고 싶은 걸 막 했다”라며 웃었다.
또 그는 “사운드적인 부분이 좋다. ‘Magictronica’ 앨범에서 1번 트랙은 사운드적으로 구현 할 수 있는 ‘변태’는 다 했다. 대중성을 전혀 따지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정말 재밌었다. 믹싱하는 선배와 같이 앉아서 별짓을 다 했다. 앨범을 만들고 둘 다 ‘여한이 없다’고 했다”라고 앨범에 담긴 흐뭇한 감정을 드러냈다.
◇사운드에 대한 진심
박기영의 음악의 특징을 한 가지 더 꼽자면 사운드다. 박기영은 좋은 사운드를 위해서라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완벽주의적 면모를 지녔다.
일례로 박기영은 마이크를 고르는 데에도 수많은 고민을 거듭해 왔다.
박기영은 “녹음용 마이크를 여러 가지 써보다 우연히 소니의 ‘C800G’라는 마이크가 나와 잘 맞다는 것을 알게 됐고, 1년을 수소문 하고 기다린 끝에 그 마이크를 구할 수 있었다. 2021년 봄부터 그 마이크를 가져와서 그 이후 낸 노래는 다 그 마이크로 녹음했다. 공연장에서도 무선 마이크와 유선 마이크를 여러 가지 써보고, 무선은 아무리 좋아도 유선을 못 따라간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공연장에서는 DPA사의 유선 마이크를 쓴다”라고 최상의 사운드를 위한 노력을 드러냈다.
박기영이 CD보다 LP 발매를 선호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박기영은 “실물 음반은 굿즈의 개념이 됐고 CD는 디지털이기 때문에 아날로그인 LP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 CD는 제작하지 않고 LP만 냈다. 크로스오버 앨범도 LP로 냈다. 내 팬들이 30대에서 50대가 많고, 그중에서도 40대가 가장 많은 것같다. 팬들에게는 LP가 향수를 불러올 거란 생각에서 였다. 또 LP알판은 제작할 때마다 다른 컬러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초판과 재판을 다르게 낼 수 있어 소장가치도 높다. LP는 아날로그여서 마스터링을 따로 또 해야 한다. 턴테이블로 들었을 때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사운드 미러 코리아’의 황병준 대표님께 의뢰해 LP용 마스터링을 다시 했다. 그래미 어워즈에서 두 번이나 수상한 엔지니어다”라고 말해 좋은 사운드를 향한 진심을 보였다.
당연히 라이브 공연에서도 많은 공을 들인다.
박기영은 “전담 공연팀으로 대학때부터 함께한 밴드와 2017년부터 함께한 김시민 엔지니어가 있다. 이 친구가 프리랜서로 나와서 2019년부터 함께하게 됐다. 베스트 앨범과 크로스오버 앨범 전곡을 이 친구가 믹싱했다. 그걸 듣고 황병준 대표님이 많이 칭찬해주더라. 그래서 나도 덩달아 ‘내 귀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흐뭇했다”라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자부할만한 에피소드는 또 있었다. 박기영은 “20주년 단독 공연을 끝으로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쭉 공연을 못했다. 그런데 20주년 공연 때 사운드 쪽에서 유명한 강호정 교수님이 현장에 오셨다. 그분이 내 공연을 보고 ‘사운드가 참 좋다’, ‘음향이 좋다’는 리뷰를 남겼다. 정말 신경을 많이 쓴 게 느껴졌다고 하더라”라고 말해, ‘자타가 모두 공인한 좋은 사운드’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박기영의 좋은 사운드에 대한 노력의 결실을 누리는 건 결국 리스너다. 좋은 소리에 대한 그의 진심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기영과 음악
인터뷰 말미가 되어서야 든 한 가지 궁금증은 박기영의 데뷔 연도다. 박기영의 데뷔 앨범이 발매된 건 1997년이지만, 데뷔 연도는 1998년부터기 때문이다.
박기영은 “데뷔는 98년 3월이다. 홍보 앨범이 97년 11월에 나왔는데, 앨범이 나오고 정식 데뷔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예전에는 앨범이 나오고 지방 라디오를 돌면서 홍보 음반을 돌리고 그랬다. 그리고 반응을 보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와야 정식 데뷔를 했다. 그래서 앨범은 공장에서 찍힌 날짜로 97년이고, 데뷔는 98년이 됐다. 사실 1집은 잘 안됐다. 2집에서부터 ‘마지막 사랑’과 ‘시작’이 인기를 얻었다. 1집은 나도 딱 1장 CD로 가지고 있다. 2집, 3집, 4집도 다 1장씩만 가지고 있다. 그나마 5집부터는 테이프도 있고 좀 챙겨놨다”라고 험난했던 데뷔 과정을 알렸다.
물론 그 이후로 박기영은 모두가 알고 있듯 오랜 시간 큰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됐고,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 박기영은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도 했다.
“육아를 하느라 반강제적으로 공백기가 생겼다”라며 웃은 박기영은 “그래도 아이 키우고 음악 작업을 하면서, 육아를 하면서도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딸에게도 많이 배운다. 딸 덕분에 K팝 가수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딸이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연준, 아이브의 장원영과 블랭핑크 로제, 제니를 좋아해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도 그 친구들을 좋아한다. 다들 너무 잘하고 좋더라”라고 모녀간의 애정을 자랑했다.
또 박기영의 딸 가현 양은 어머니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기에, 그의 정식 데뷔에 기대감을 갖는 팬들도 많다. 실제 박기영의 인스타그램 등에는 딸 가현 양의 음악적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 다수 존재한다.
박기영은 “딸이 유전적으로 타고난 게 있다. 그래도 나 처럼 가수에 대한 꿈이 있다면 아직 어리니 성장기 지나고 변성기도 지나서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라며 어머니의 마음으로 딸의 미래를 응원했다.
사실 26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활동하면서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당장 재작년만 해도 25주년 기념 단독 공연이 외부 이유로 취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기영은 이를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곳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박기영은 “지나고 보면, 만약 결과가 달랐다면 더 상황이 안 좋아졌을 것이 눈에 보이는 일들이 있다. 이건 확실히 겪어봐야 아는 거다. 내가 생각했을 때, 삶은 내가 준비하고 기대한 만큼 가지 않는다. 준비가 됐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 수 있고 억지로 떼를 써서 주어진 것들은 결국 내 것이 되지 못하고 떠나가게 되어 있다”라고 삶의 철학을 밝혔다.
이어 그는 “내가 45살 여름에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까지 살면서 한 실수들, 방황들, 그로 인해 힘들어야 했던 나와 나의 가족, 나의 딸까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한 실수를 다시 반복한다면 얼마나 모자란 사람인 거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진중히 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뒤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래서 공연도 ‘아직 때가 아닌가보다… 더 좋은 때가 오겠지’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됐다. 25주년을 기념하려고 패키지 앨범을 냈는데, 이것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여기서 연결되는 박기영의 또 한 가지 철학은 ‘정해두지 않는 것’이다. 박기영은 “정해두고 가면 삶이 정말 피곤해진다. 정해놓은 건 ‘25주년에 패키지를 내자’로 끝났다”라고 단언했다.
단, 이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박기영은 하고 싶은 것이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 음악가다.
박기영은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나는 너무 감사하게도 창작의 샘물이 흐르고 넘친다. 그래서 여전히 계속 뭔가를 하고 싶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나하나 하려는 생각이다. 신곡을 많이 갖고 있는데 이걸 또 언제 발표하나 싶기도 하다.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쓴 곡을 계속 들으면서 추리고 있다. 그렇게 버리고 추려서 지금 당장 정규 앨범 분량의 곡이 있지만, 신곡 발표는 늘 두렵다. 나만 좋고 끝나는 고급 취미처럼 느껴질까 봐서 그렇다. 요즘 리메이크가 대세라 그 편이 더 안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신곡은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도전이니까 절대 놓을 수는 없다. 25주년 패키지도 베스트 음반과 크로스오버는 팬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일렉트로닉은 많이 관심이 없더라. 하지만 나는 계속하려 한다.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다. 또 (후배들이) 내 곡을 리메이크 해 줄 때 아주 감사하다. 좋은 곡들 많으니 자주 리메이크 해 달라”라며 크게 웃어보였다.
이처럼 ‘정하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박기영이지만, 그중에서 확고하게 정해놓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도 존재한다.
바로 음악을 향한 사랑이다.
“평생을 같은 위치에서 노래할 것 같다. 나는 정말 음악을 사랑한다. 음악보다 더 좋은 게 없다. 무얼 해도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을 안겨주지 않더라”
전자신문인터넷 최현정 기자 (laugardag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