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최후 진술을 통해 자신이 직무에 복귀하면 2차 계엄을 시도할 것이라는 의혹을 일축했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목적을 대부분 이뤘다고 판단했다. 직무에 복귀하면 미래세대를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 추진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심판 기각을 전제로 이러한 내용의 진술을 67분간 이어갔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의 국정 상황을 설명하는 한편, 당시의 위급성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은 죄송하다고 했다.
반면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장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국민과 헌법에 주먹질하고 린치하면 되겠냐”며 △헌법상 계엄 조건 위반 △계엄 선포 절차 위반 △국회 권능 방해 △위헌위법한 포고령 발표 △중앙선관위 침탈과 주요 인사 체포 시도 등 총 5가지 탄핵 사유를 강조했다. 진술 말미에는 애국가 가사를 읊으며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헌재에서 열린 11차 변론 최후 진술에서 “비상계엄의 목적은 망국적 위기 상황을 알리고 헌법제정권력인 주권자들께서 나서주시기를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비상계엄의 목적을 상당 부분 이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제가 직무에 복귀하면 나중에 또다시 계엄을 선포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이미 많은 국민과 청년들께서 상황을 직시하고 나라 지키기에 나서고 계시는데 계엄을 또 선포할 이유가 있느냐.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먼저 87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려고 한다. 국민 뜻을 모아 조속히 개헌을 추진해 우리 사회 변화에 잘 맞는 헌법과 정치구조를 탄생시키는 데 신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통합은 헌법과 헌법 가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개헌과 정치개혁이 올바르게 추진되면 그 과정에서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들이 통합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현행 헌법상 잔여 임기에 연연해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제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국정 업무에 대해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을 감안해 대통령은 대외관계에 치중하고 국내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길 생각”이라며 “글로벌 중추 외교 기조로 역대 가장 강력한 한미동맹을 구축하고 한미일 협력을 이끌어냈던 경험으로 대외관계에서 국익을 지키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 계엄의 부정적 기억 때문인지, 거대 야당과 내란 공작 세력이 이를 악용하여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은 과거의 계엄과는 완전히 다르다.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서 “국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국민께 알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나서 달라는 절박한 외침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주도의 '줄탄핵' '예산안 일방 삭감' 등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였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특히 “북한, 중국, 러시아와 연계된 반국가 세력들은 가짜 뉴스와 선전선동을 통해 사회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2023년 적발된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만 보더라도, 이들의 실체는 명확하다. 이들은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여 군사시설 정보를 넘겼고, 북한의 지령에 따라 총파업과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면서 “그러나 거대 야당은 이를 옹호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경찰의 대공수사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등 간첩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 국방 예산을 삭감하여 군의 핵심 전력을 약화시켰다. 방산 수출도 방해하고 있다. 국회에 방산 비밀 자료를 제출하도록 강요하고, 야당이 반대하면 방산 물자 수출을 막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공직자를 무차별 탄핵하고, 검사들에 대한 탄핵을 통해 수사와 재판을 방해하는 '방탄 탄핵'도 자행했다. 감사원장을 탄핵하여 자신들의 간첩 행위를 덮으려는 '이적 탄핵'도 벌였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에 앞서 최후 진술에 나선 정 위원장은 “윤 대통령은 헌법을 파괴하고 국회를 유린하려 했다. 민주주의와 국가 발전을 위해 파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2월 3일 내란의 밤, 전 국민이 TV 생중계로 무장 계엄군의 폭력 행위를 지켜봤다. 하늘은 계엄군의 헬리콥터 굉음을 들었고 땅은 무장 계엄군의 군홧발을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은 국민 전체의 약속이자 국민이 지켜야 할 이정표, 나침반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피로서 지켜온 민주주의를 짓밟고 피를 잉크 삼아 찍어 쓴 헌법을 파괴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또 “선진국 중에서 독재 국가는 없고, 민주주의의 정착 없이 국가 발전을 이룬 나라는 없다. 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취임했지만 국회에 계엄군을 보내 침탈하고 헌법을 유린했다”며 “내란의 범죄는 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누구라도 예외 없이 처벌의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헌재는 이날 최종 변론을 끝으로 탄핵심판을 마무리했다. 약 2주간의 심리를 거친 뒤 3월 중순께 윤 대통령을 탄핵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윤 대통령은 그 즉시 대통령 업무에 복귀한다. 인용될 경우, 윤 대통령은 그 즉시 파면되고 60일 내 대선이 치러진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11차 변론에서 채택된 증거들을 우선 조사한 뒤 국회와 윤 대통령 측의 종합의견을 2시간씩 들었다. 국회 대리인단은 비상계엄 선포의 위법성과 함께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을 비판했다. 윤 대통령 대리인단은 야당의 국정마비 시도로 정상적 국정운영을 할 수 없었다며 비상계엄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변론을 종결한 헌재는 앞으로 재판관 평의를 통해 탄핵 여부에 대한 의견을 모으게 된다. 비상계엄 선포 자체의 적법성, 과정(국무회의 의결)에서의 적법성, 포고령의 법 위반 여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했거나 법관이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에 대한 체포 시도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법조계는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와 유사하게 최종 선고 시점을 변론 종결 약 2주 뒤로 전망한다. 헌재는 9명 정원 중 8명의 헌법재판관이 탄핵심판에 참여했다. 이 중 6명 이상이 탄핵을 인용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된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