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신의 핀테크 스토리]영국 핀테크, 세계 최초 규제샌드박스·오픈뱅킹 도입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디지털경제금융연구원장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디지털경제금융연구원장

영국은 미국과 함께 전통 금융의 강국이면서도, 늘 새로운 금융을 시도해 왔다. 멀리는 보험시장을 개척한 로이드 보험 설립(1871년), 20세기 후반엔 은행·증권간 규제 장벽을 제거한 '빅뱅' 금융규제 완화(1986년), 21세기 들어선 세계 최초로 규제샌드박스(2015년)와 오픈뱅킹(2018년)을 도입한 핀테크408 선도 국가다. 특히 2010년 캐머린총리 당시 조성된 런던 동쪽의 테크시티는 9,000개 내외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고, 핀테크와 기술혁신 창업의 허브로 유명하다. 영국의 핀테크 현황을 간단히 살펴보자.

영국 핀테크업체 수는 2015년 1,600개에서 2025년 초 3,300여 개로 10년 만에 두 배, 특히 그중 해외업체가 42%일 정도로 글로벌화되어 있다. 업체 수로만 보면 유럽 핀테크 2위인 프랑스(975개), 아시아 핀테크 허브인 싱가포르(700여 개) 대비 거의 4~5배다. 핀테크업체 중 유니콘431(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도 2025년 초 기준 52개로 미국, 중국, 인도에 이어 4위, 데카콘(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은 6개로 3위다.

왜 이렇게 활발한가. 첫째, 런던이라는 강력한 금융허브를 꼽는다. 런던은 17세기부터 세계 금융 중심지였고, HSBC, Lloyds, Barclays 등 대형 은행과 보험사들이 본사를 두고 있다. 영국은 2023년 금융 순수출 규모(981억 달러) 세계 1위, 금융 및 관련 서비스(예 : 법률·회계)로 벌어들인 무역 흑자만 1,253억 달러다.

둘째, 강력한 정책 지원이다. 금융청(FCA)은 규제샌드박스, 경쟁시장국(CMA)은 오픈뱅킹을 도입했고, Innovate Finance, CFIT(Centre for Finance, Innovation & Technology), Level39, Barclays Accelerator 등 육성기관과의 협력으로 핀테크 친화적인 규제 인프라를 구축했다. 특히 지금까지 166개의 핀테크 서비스를 출시한 규제샌드박스가 큰 역할을 했고, 싱가포르, 한국, 중국 등과 '핀테크 브릿지' 협정을 체결, 핀테크의 글로벌 진출·협력도 돕고 있다. 대표기업으론 모바일뱅킹을 제공하는 Monzo, 블록체인 기반 결제업체인 Billon 등을 꼽는다.

셋째, 풍부한 투자생태계 구축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은 Index Ventures, Atomico 등 글로벌 벤처 캐피털과 엔젤투자자·엑셀러레이터 등 다양한 투자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핀테크업체들이 단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단 얘기다. 2024년 영국 핀테크들이 조달한 자금은 36억 달러(5.2조원)로 세계 2위, 유럽 2위인 프랑스(11억 달러)의 3배 이상이다.

어떤 부문이 활발한가. 시장규모(2024년 기준)로 보면 디지털결제(30%), 로보어드바이저(20%), P2P(15%), 레그테크와 인터넷뱅킹 각기 10%,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8%)의 순으로 비교적 고른 편이다. 우선 디지털결제의 성장요인은 NFC 기반 비접촉식 결제와 PSD2(Payment Services Directive 2) 등 두 가지다. 영국은 기존 카드 결제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 NFC 방식의 비접촉식 결제가 쉽게 도입됐다. 소비자의 64%가 스마트폰 기반 NFC 비접촉식 결제를 사용하며, 특히 런던 대중교통시스템(TfL)이 NFC기반 'Tap-to-Pay'방식을 도입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PSD2는 고객이 동의하면 은행이 제3자와 고객데이터를 공유하도록 하는 제도다. 마이데이터691 확산으로 디지털결제를 급증시키는 계기가 됐다. 대표기업은 글로벌 송금업체인 Wise와 클라우드기반 결제업체인 Checkout․com으로 모두 데카콘이다.

다른 국가와 달리 영국은 로보어드바이저가 활발하다. 규제샌드박스 외에 ISA641(개인 저축 계좌)와 SIPP558(개인 연금) 등 세금 혜택이 성장요인이 됐다. 최근 비중은 낮지만,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투자가 5~10%로 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Nutmeg와 Moneyfarm이 대표적이다. 또한 영국은 우리나라에서 취약한 P2P와 레그테크도 활발하다. P2P로는 2005년 세계 최초로 설립된 P2P플랫폼 Zopa와 중소기업 대출 기반의 유니콘 Funding Circle이 유명하다. 레그테크는 금융청의 규제샌드박스 지원과 Innovative Finance ISA(IFISA)와 같은 세제 혜택이 성장에 도움을 줬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도 규제샌드박스,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등 핀테크를 위한 주요 선진시스템들은 다 도입했다. 어떤 점들을 추가·보완해야 하는지 예컨대 금융업계와의 협력, 활발한 투자 생태계, 글로벌 협력체계 구축, 세제 혜택 등에 대해 보다 세밀한 검토와 분석이 필요하단 생각이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