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無水) 건조 세탁기, 회오리 팬 에어컨, 벽을 깎은 냉장고`
삼성전자 가전부문에서 최근 내놓은 혁신 결과물이다. 개발 과정을 추적해 보면 `삼성식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삼성전자는 “고객가치를 높이는 어떠한 도전도 주저하지 말라”고 독려했다. 실패 반복을 즐기라는 주문이다.
제품 혁신 과정을 보면 `문제 인식`→`개선 목표 수립`→`과감한 실험정신`으로 정리된다. 기간은 대체로 1년.
지난달 출시한 무수건조 세탁기 `버블샷3 W9000`이 대표적 사례다. 개발 시작은 작년 초. 사업부는 `건조에 소요되는 50ℓ 물`에 문제를 제기한다. 드럼세탁기의 장점이 물을 덜 쓰는 것인데 건조에만 50ℓ를 사용하는 것을 지적한 것. 그리고 물 없이 건조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가능한 시간은 1년. 이때부터 실험은 시작됐다. 수십개 세탁기에서 팀별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셀 수 없이 많은 옷을 건조 과정에서 태웠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에어 스피드 드라이` 방식. 습기와 공기가 만나는 면적을 늘리면 물을 쓰지 않아도 습기를 없앨 수 있다는데 착안했다. 건공기 유입과 습공기 배출을 동시에 하는 다단계 제습 방식을 고안했다. 김성진 세탁기개발그룹장(전무)은 “무모하다시피 한 실험이 혁신의 원동력이다”고 말했다.
Q9000 에어컨에 채택한 회오리팬 개발 과정도 유사하다. 시작은 에어컨 두께 슬림화에서 시작됐다. 두께가 수㎝에 불과, TV 옆에 놓아도 어울리도록 에어컨 두께를 얇게 만들라는 것. 목표가 나왔다. 종전 에어컨 두께 460㎜를 300㎜ 이하로 낮춰야한다. 개발진은 팬 두께를 150㎜ 이하로 줄여야 했다. 기존 팬 개선이 아닌 `무(無)`에서 새로운 팬 개발로 방향을 잡았다. 1년여 노력 끝에 항공기 엔진 원리를 채택한 회오리팬이 나왔다.
T9000 냉장고 개발과정도 실험의 연속이었다. 미션은 냉장고 크기를 최대한 유지한채 용량을 40ℓ 늘리는 것. 냉장고 벽을 깎는 방법밖에 없었다. 1000개가 넘는 시료(시험· 검사·분석 등에 쓰는 물질)를 검사했다. 1000여개 부품 가운데 100여개를 바꿨다. 6개월만에 용량을 40ℓ 늘렸다.
삼성 내부에선 윤부근 사장이 `삼성식 실험정신`을 가전조직에 뿌리내리도록 했다고 평한다. 지난해 초 선보인 스마트TV용 `에볼루션 키트`도 대표적 사례다. 1년 후 TV(2013년형)에나 사용될 제품을 미리 공개했다. 삼성 관계자는 “도전정신 결과물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그런 결단으로 이어졌다”고 평했다. 1년 새 수많은 개선을 미리 확신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미국 포브스지는 이를 주목했다. 삼성전자 경쟁력으로 도전과 실험정신을 꼽았다. 과거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에 과감한 투자로 시장을 주도한 것처럼 10여년째 이 같은 경험을 성장엔진으로 삼고 있다는 것.
삼성 출신 업계 임원은 “삼성의 지속성장 뒤에는 위험을 동반한 과감하고 창조적인 실험이 있다”며 “그것은 현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와 맥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가전에서 나타난 `삼성식 실험정신`과 성과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