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준조세 유감

박광선 기술산업부장 kspark@etnews.co.kr

 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준조세 관행이 여전한 것 같다.

 『정부와 사회단체로부터 요청받는 기부금 건수가 한해 100여건을 웃돌며, 이를 엄격히 심사해도 100억원 이상은 내야 한다』는 모 재벌 그룹 관계자의 말처럼 아직도 우리 기업들은 준조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부패 때문에 돌아가는 외국 투자자들이 없도록 부당한 요구를 철저히 조사·시정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사정당국의 서슬퍼런 감시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법령상 부담의무가 없는 준조세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작금의 기업현실이다.

 물론 이러한 기부금품 모집행위는 지난 95년에 제정한 기부금품 규제법에 따라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부담금과 분담금을 거둬들이는 것은 광범위한 예외조항을 뒀기 때문이다.

 정부 산하기관인 도로교통안전협회·국제교류재단·대한지적공사 등이 측량수수료·기금분담금·전기설비검사수수료·검사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지난 95년부터 97년까지 3년동안 1조3000억원을 거둬들이고 특정사업의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공적기금의 자산규모는 정부재정의 2배를 넘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사정이 이쯤되고 보니 금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고, 이런 저런 명목으로 요구하는 준조세에 허리 펼 날이 없다는 기업인들의 한숨이 이해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기업의 목줄을 잡아채며 거둬들인 공적기금이 매년 얼마나 징수되는지,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공적자금이 정부예산과 분리 운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국회나 대통령에 대한 보고의무까지 면제됐기 때문이다. 해당 부처나 기관에서 징수금액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예산·결산서나 관련 백서를 아무리 뒤적거려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존재가 일명 「부처의 밥그릇」이라고 불리는 공적자금이다.

 대기업의 허리까지 휘청이게 만들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면서도 종적이 묘연한 준조세 규모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에 발표한 「조세외 공공부담과 재정」이라는 보고서 정도다. 금융기관을 제외한 599개 상장기업의 재무제표를 기초로 조사한 이 자료에 따르면 94년부터 97년까지 기업들이 지출한 준조세는 모두 8조2578억원으로 같은 기간중 이들 기업이 올린 경상이익의 34.8%, 연구개발비의 44.8%에 이른다.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를 준조세로 지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전력이 올해만 1조2312억원을 「공익적 부담금」으로 내야 할 정도로 공기업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촘촘히 짜여진 그물이 준조세다.

 오죽하면 정부가 기침만 해도 감기에 걸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불경죄를 무릅쓰고 준조세의 부과기준과 사용용도를 명확히 해달라며 「부담금 기본법」이나 「준조세 경비관리 기본법」 제정을 촉구했을까.

 물론 우리의 고질병인 준조세 문제가 하루 아침에 치유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내 기업은 물론이고 외국인들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준조세 문제는 현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하는 「시장경제」 논리로부터 접근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준조세 문제도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할 때다. 국가나 기업 모두가 투명성을 보장받지 못하고서는 IMF를 겪은 우리로서 국제적인 신뢰회복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일등국가로 가기 위한 노력들이 국가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지금 준조세 문제도 공론을 통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정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