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반도체산업 키우는 길

 국내 전자산업이 온통 반도체 호황으로 들떠 있다. 지난 95년 사상최대를 기록했던 국내 반도체산업의 호황이 4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벌써부터 올해 흑자규모가 몇조원 단위에 이를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불과 한달 반여만에 D램 현물시장가격이 무려 5배 이상 뛰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혹자는 권토중래를 얘기하고 혹자는 고진감래를 들먹이기도 한다. 4년이라는 기나긴 시련을 참아낸 결과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시 찾아온 반도체 경기호황은 지난 95년 당시와 비교하면 상황전개가 비슷하다. 반도체 호황 덕택에 무역수지 개선의 효자상품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반도체 단일품목이 우리나라 연간 전체 수출액의 15%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반도체라는 특정 제품에 의해 편중된 무역수지 개선이라는 경계론도 어김없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놀랍도록 변화한 것은 지난 95년 당시에 비해 반도체업계가 의외로 차분하다는 점이다. 국내 반도체산업 역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던 95년의 뒷정리를 잘못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95년 당시 국내 반도체산업은 얼마나 흥청망청했던가.

 과거의 잘못을 싸잡아 비판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굳이 삼성자동차라는 실패한 사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때 벌어들였던 돈의 일부만이라도 반도체산업에 재투자됐더라면 국내 반도체산업은 지금보다는 훨씬 안정된 구조가 됐을 것이라는 가정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다소 진부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에 대해 다시 한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년 만에 또다시 호황이 찾아오면서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엄청난 이익을 실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D램 하나로 버티는 국내 반도체산업의 기형적인 구조는 그때와 크게 나아진 게 없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해결책도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이른바 비메모리 반도체로 통칭되는 시스템 IC산업을 육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 역시 여전히 목소리만 높을 뿐이다. 어떻게 시스템 IC산업을 육성시킬 것이라는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부처들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발전방안이라는 육성책도 앞으로 몇년 동안 몇백억원을 들여 세계 수준의 시스템 IC국가로 성장시키겠다는 뜬구름잡기 일색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국내 업체들의 IMT2000용 핵심 칩 개발소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무선통신분야의 연구개발은 지난 92년 9월 미국의 퀄컴사로부터 이른바 CDMA라는 기술을 도입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남의 기술을 도입해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셈이다. 이는 시스템 IC산업의 속성상 남의 것을 흉내내 우리 것으로 만드는 식의 예전 연구개발 방식으로는 절대 일류가 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시스템 IC산업은 SW산업처럼 아이디어가 생명인 지식산업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벤처정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의 시스템 IC산업은 「잘 돼야 2등」을 벗어날 수가 없다.

 바꿔 말하면 시스템 IC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나 대기업 차원의 대대적인 물량공세가 아니라 반도체 디자인하우스와 같은 소규모 벤처기업의 저변이라는 뜻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첨단 벤처업종이 밀집된 코스닥 시장에 ASIC업체의 수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밖에 없다는 것은 국내 시스템 IC산업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반도체산업의 저변을 키워야 반도체산업이 산다.

양경진 산업전자부장 kj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