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거꾸로 경영

거꾸로 경영

 얼마 전 미래산업 정문술 사장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 사장이 풍기는 모습은 항상 일에 대한 확신과 신념으로 가득차 있다. 여기저기서 강연회 연사로 참석한 탓인지 이야기를 푸는 말솜씨가 예전보다 세련됐다고나 할까.

 화제의 초점은 미래산업이 최근들어 상품화한 칩마운터에 대한 내용이었다. 정 사장은 상품화가 다소 늦어지는 바람에 올해 매출액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물론 정 사장의 칩마운터 개발에 대한 애착이나 자부심은 대단하다는 점을 쉽게 엿볼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반도체장비인 핸들러 전문업체나 칩마운터 전문업체는 있지만 두가지 품목을 동시에 생산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한가지 품목의 제품개발에도 엄청난 개발비가 소요되기 때문이지요. 남들은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 바로 미래산업에는 기회로 작용한 셈입니다. 핸들러에 이어 칩마운터 개발은 비슷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해 남들이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개발분야를 절묘하게 찾아낸 결과입니다.』

 사실 정 사장에게 있어 칩마운터 개발은 기업 사활을 거머쥔 하나의 도전이었다. 국내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도 칩마운터 개발을 포기한 상황에서, 그것도 설비투자는 차치하고 연구개발에 엄두도 못냈던 IMF 기간에 일궈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미래산업의 경영방식을 보면 기존 기업과는 색깔이 전혀 다르다. IMF 기간에 수십억원에 달하는 개발장비를 구입하는 과감한 승부근성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경영계획이니 장기 경영전략이니 이른바 사업플랜이 없는 것이 이 회사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예측이 뛰어난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것보다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마케팅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미래의 최우선 경영전략이다. 연구개발 추진방식도 미리 결재를 받기보다는 개발일정이나 개발결과를 보고하는 후결재방식이 대부분이다. 이같은 노력과 집념이 IMF 한파가 한창이던 지난해 매출액과 비슷한 연구비를 투입해 칩마운터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정 사장의 경영방식을 「거꾸로 경영」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상이 거꾸로 됐든지 정 사장이 거꾸로 경영을 하든지 둘 중의 하나가 거꾸로 된 것은 자명하다.

 다가오는 밀레니엄 시대의 전략적인 사업을 꼽으라면 단연 디지털 혁명을 몰고올 인터넷분야다. 미국은 지금 인터넷 세계화전략 추진에 여념이 없다. 산업화에 이어 밀레니엄 시대의 정보화분야에도 1등 국가로 세계를 주도하겠다는 의도다.

 미국은 정보화로 이행되는 세기말 사회에서 이미 완벽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자유롭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개방형 구조의 틀로 짜여져 있다. 정보기술(IT)분야로만 한정할 경우에도 미국의 경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통신망분야에선 AT&T가, 소프트웨어분야에선 마이크로소프트가, 반도체분야에선 인텔이란 거대기업이 버티고 있다. 하드웨어건 소프트웨어건 디지털사회를 주도하는 하부구조의 경쟁력을 갖추고 밀레니엄 시대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의 현실은 어떠한가. 크고 작은 기업들의 관심이 온통 인터넷이나 통신서비스, 사이버 상거래 등 상부구조에만 쏠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다가올 밀레니엄 시대에 대응해 노도처럼 흐르는 디지털 혁명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IT분야의 인터넷서비스나 전자상거래 등을 위주로 한 상부구조적 사고가 하부구조의 기반없이 뿌리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IT분야에서 내세울 수 있는 기술이라야 기껏해야 한정된 분야의 반도체 생산기술이나 몇몇 정보통신기술이 고작이다.

 이같은 기술도 지금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자칫 실기하면 개도국의 추격을 허용해야 할 형편이다. 하부구조의 기반 없는 상부구조의 기형적인 성장은 사상누각이다. IT산업 발전은 튼튼한 하부구조가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