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대화의 묘약

모인 문화산업부장

 정치권만큼 문화산업계가 어수선하다.

 스크린쿼터 폐지문제로 영화계가 한 차례 홍역을 치르더니 최근에는 PC방 업계가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잠잠하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비디오 대여업자들이 대낮 시위를 벌였다. 이러다간 문화산업 관련단체들이 하나둘씩 모두 거리로 뛰쳐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문화산업은 말그대로 2000년대를 지향하는 미래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지식인으로 개그맨이 먼저 선정됐고 노래만 잘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벤처자금도 쉽게 모을 수 있게 됐으며 정부를 통해 융자금을 받아 쓸 수 있는 세상까지 됐다.

 이뿐인가. 문화산업 육성정책들은 하루가 무섭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뻥 뚫리지 않고 뭔가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는 왜일까. 한마디로 정부의 문화산업정책이 산업계에 신뢰감을 안겨주지 못한 채 전시행정과 땜질식 처방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등급 분류체계를 놓고 고심끝에 완전등급제를 포함한 영화진흥법을 개정하겠다고 한 정부의 방침은 땜질식 처방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문제는 애초부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부가 사전검열이라는 울타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완전등급제의 도입은 필연적이었다. 그런데도 슬그머니 완전등급 대신 등급판정 보류라는 것을 만들어 시행했다. 여론의 등에 떠밀리지 않았다면 정부의 영화진흥법 개정방침이 과연 나왔을까 묻고 싶다.

 논란을 빚은 멀티게임장에 대한 등록예외기준 고시안도 같은 사례다. 한쪽에서는 「아니다」라고 하는데 정부는 무조건 따라오라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쪽이 밖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더 있겠는가.

 결국 볼썽 사나운 모습은 다 본 채 매듭이 지어지긴 했으나 정부가 좀 더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민심을 읽지 못한 성급한 정책은 또 있다. 요 며칠 사이 대여업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는 정부의 비디오 사전주문제 사업난항은 대표적인 사례다.

 물류선진화 실현이라는 정부의 당면과제에 걸맞은 사업임에도 정작 당사자에겐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숲만 바라보고 가지는 거들떠보지 않은 까닭이다. 업계의 주장을 빌리자면 비디오 대여점들은 지난 93년 이후부터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93년 3만6000개에 달했던 비디오 대여점 수가 1만7000여개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경인데 자신의 돈을 박고 물류사업에 동참하라면 누가 참여하겠는가.

 그렇다고 무턱대고 거리에 나서는 일은 이제 거둬들여야 한다. 시위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점에선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극한대립은 산업을 저해하고 종국에 가서는 서로에게 깊은 앙금과 상처만 남겨줄 뿐이다.

 지난 93년 4월의 일이었다. 동장군이 물러났음직도 한데 건물 밖은 찬바람이 불었다. 서울 한복판 도로 한켠에서는 비디오가격 인상문제로 비디오 제작사와 비디오 대여점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고 있었다. 이른바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곧 극한상황이 빚어질 것만 같은 위기감까지 감돌았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긴 것은 다름아닌 정부 관계자와 이해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협상을 벌인 덕택이었다. 정부는 먼저 업계의 현실을 도외시한 책임을 정중히 사과했고 제작사들은 당초 계획한 가격인상률을 고집하지 않았다. 가격인상을 극력 반대했던 비디오 대여점도 제작사의 어려운 경영상황을 듣고는 타결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정부의 정책수립에 따른 신뢰회복 노력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만큼 좋은 묘약이 없다. 여론에 의해 원칙이 바뀌어선 안되겠지만 서로의 지속적인 대화는 상대방에게 막힘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가운데 땜질식 처방 또한 나올 리 있겠는가 싶다.

 적어도 국민을 걱정케 하는 정치권을 빼닮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