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이젠 "디자인시대"

윤원창 생활전자부장

 세계 정보통신산업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 미국 경제를 불황의 늪에서 건져올린 주역인 벤처기업들이 밀집한 곳이다. 정보통신 벤처기업들이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새로운 고급 정보기술을 만들어내는 이곳에는 세계적인 유명 디자인회사가 운집해 있기도 하다. 디자인과 벤처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벤처기업들이 첨단 기술을 상품화했다 해도 디자인이 처져 실패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훌륭한 기술로 세계특허를 받았으면서도 디자인이 조악해서 주저앉은 제품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디자인을 단순히 상품의 겉포장 정도로 생각해 TV는 화면만, 오디오는 소리만 잘 나오면 되고 보기 좋아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흰색이나 검은색 일색이던 가전제품에 붉은색·노란색이 등장한 것을 두고 놀라운 변화인 양 화제가 됐던 것이 몇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는 디자인이 제품의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소비자가 상품을 선택하는 데 디자인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생산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며 일부 첨단제품을 제외하고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기호가 상품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 같은 기능, 같은 품질의 제품이라도 좀 더 나은 디자인이라면 높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고 마케팅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디자인은 상품의 부가가치 정도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품의 생명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소니사가 워크맨으로 한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것이나 애플의 아이맥(iMac) 컴퓨터가 큰 인기를 모으면서 시장에서 성공한 것도 단적인 예다.

 디지털시대로 대변되는 21세기에는 디자인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점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2010년 인터넷을 통한 상품구매가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이때 사이버 쇼핑몰에서 상품의 디자인이 제품 구매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인터넷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최근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이같은 상황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경향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기업들의 경쟁도 점점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디자인이 상품과 기업의 성패는 물론 한 나라의 성쇠를 좌우할 수 있는 핵심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이 디자인산업 육성에 관심을 쏟고 있다.

 「신기술을 아버지로, 디자인을 어머니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30년대의 대공황을 극복했던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취임 이후 디자인진흥국을 별도로 설치, 디자인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영국도 「세계의 디자인공장이 된다」는 목표로 디자인산업 육성에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97년부터 독일제품에 「메이드 인 저머니」대신 「저먼 디자인」이라고 표기하도록 했다. 세계 각지 공장에서 독일제품을 생산하는 현실에서 이젠 디자인만이 독일제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얘기다.

 우리도 최근 디자인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와 지식이 중심되는 21세기에는 문화적 감각의 디자인이 세계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라며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이에 따라 정부도 앞으로 5년동안 8000억원을 디자인산업 기반조성에 투입하기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육성방안도 마련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디자인 정책이 일관성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하고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부터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고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벤처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벤처기업을 육성하려면 디자인산업 육성 정책이 임기응변식이어서는 안된다. 기술개발을 통한 상품의 고급화라는 상투적인 대응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경제회생을 위해 우리가 가장 현실적으로 접근이 용이하며 시급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디자인 전략을 통해 해외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나 대만같은 우리의 수출경쟁국들은 우리가 그동안 하찮게 여겼던 디자인 개발을 통해 막대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들도 디자인 예산을 불요불급한 것으로 보고 1순위로 삭감하는 경영방식은 옳지 않다. 이런 식으로는 수출경쟁력을 갖춘 신상품을 만들 수 없다. 품질과 가격의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디자인 경쟁력을 갖춘 「코리안 디자인」으로 수출전략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