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벤처기업을 살리자

양경진 산업전자부장 kjyang@etnews.co.kr

 미국 인텔 하면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업체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세트나 SW솔루션분야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업체다. 올해 추정매출액이 260억달러에 달하는 등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세계 IT산업의 리딩기업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인텔이 이처럼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독보적인 아성을 굳히고 있는 데는 기업 스스로 미래 환경변화에 대응한 기술개발 능력과 마케팅전략 때문일 것이다. 인텔의 기술개발은 현존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미래기술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세대를 뛰어넘는 뛰어난 기술예측력을 자랑한다. 일례로 CPU 집적기술에 관해서는 인텔의 기술이 교과서이자 이론서로 자리를 굳힌 지 오래다.

 인텔 역시 사운을 거머쥔 위기에 직면한 경우도 있었다. 오래 전에는 D램사업 부진으로 인한 위기의 시절이 있었고 가깝게는 부동소수점 연산기능의 오류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시기도 있었다.

 인텔이 급변하는 세계 정보기술시장에서 마냥 호시절만을 구가할 수 있을지 이제부터는 미지수다. 시장변화에 진보적인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PC의 시대는 가고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킹시대에서 어떤 기업이 인텔을 위협할 것인가. 반도체분야의 랭킹 2위인 일본 NEC도 아니고 D램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업체는 더욱 아니다. 네트워크시대의 환경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수많은 ASIC업체들이 앞으로 인텔의 아성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리스크 칩코어분야에서 초고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영국 ARM이라는 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가 개발한 리스크 마이크로프로세서 코어기술을 인텔은 물론 에릭슨이나 퀄컴에서 제공받을 정도다. 450명의 인력으로 지난해 5월 미국 나스닥과 런던증시에 상장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무려 80억달러다. CPU 설계 엔지니어 몇명으로 불과 10년도 안된 짧은 기간에 일궈낸 놀랄 만한 성과다.

 상황은 다르지만 국내서도 벤처기업의 성공사례는 수두룩하다. 최근들어 숱한 반도체 관련업체들이 이 분야 사업에 참여, 벤처기업으로 성공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ASIC분야에서 특정 칩개발에 성공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반도체 전공정 장비분야를 상품화해 이 분야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이제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반도체업체들이 한국산 반도체장비 구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불과 3∼4년 전에 우리의 현실은 어떠했는가. 세계 최대의 D램 생산국이면서 한해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관련장비 수요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했고 특정 기술도입에 몇억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기술예속국이었다. 더욱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전세계 IT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이제 여기저기서 일말의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반도체분야에선 세계 최고수준의 D램 양산기술과 기술인력, 여기에 다양한 형태의 풍부한 자금 등 기술력을 지닌 벤처기업이 나래를 펼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고 있다. 숱한 벤처기업이 기술력이든 마케팅이든 성공신화를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물론 일각에선 벤처기업에 대한 버블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처럼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상황에서 과연 기술력을 지닌 벤처기업인지 옥석을 가리기도 힘들 정도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된 환경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벤처기업이 충분한 자양분을 얻고 토양을 만드는 일은 이제 시작단계다. 모처럼 찾아온 이같은 분위기가 지속될 수 있도록 벤처기업·벤처기술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때다. 벤처기업이 살아야 IT산업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