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딴죽만 거는 국회

모인 문화산업부장 inmo@etnews.co.kr

 5년째 끌어온 「통합방송법」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소속 10명만이 참석해 이를 처리한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여야가 합의해 처리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여당 단독처리라니, 그런 모습을 보려고 5년씩이나 기다렸나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본회의를 앞두고 또 한차례 볼썽 사나운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이번에 통과된 「통합방송법」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췄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방송개혁의 취지는 사라지고 여야가 서로 「제몫찾기」에만 몰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방송위원회 구성과 KBS이사회 구성을 놓고는 온하루를 소일했다.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따위의 얘기는 단지 사치스러운 말장난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국회가 5년동안 「통합방송법」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할 때 케이블TV 등 방송산업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무궁화위성을 3번씩이나 쏘아 올리면서도 제대로 된 방송 한번 못했고 세계각국의 방송들이 앞다퉈 나서는 인터넷방송 등에 대한 비전 구상은 먹구름인 상태다. 지금 당장 위성방송을 시작한다 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데 무대책인 상황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우리의 국회는 늘 그모양이다. 언젠가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국회 때문에 무슨 일을 못한다』고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지난해 말 영화진흥위원회의 구성문제로 영화계가 떠들썩했을 즈음의 얘기다.

 지난해 말 정부는 말도 많은 영상업계의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정족수를 10인 이하로 한 영화진흥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법안 심사과정에서 「10인 이하」라는 단어는 쏙 빠지고 「10인」이라는 「말뚝어」가 박혀 통과됐더라는 것이다. 예상대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위원의 구성과 법 절차상의 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고 끝내는 신임 위원장이 한달도 못돼 중도사퇴하는 「수모」를 겪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고 항변한다면 이 문제는 그정도로 덮어두자. 그러나 최근 정부의 영화진흥법 개정안이 빛을 보지 못한 채 폐기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개정안은 등급외 판정으로 상영을 못하게 하는 현행 법률이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등급외 전용관 설치」 등을 포함한 내용이 골자다. 정부는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여러 조건을 달았다.

 등급외 전용관의 운영자와 장소 등을 엄격히 제한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크게 강화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추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개정 법률안은 국회로 넘어간 지 하루도 못돼 폐기되고 말았다. 더 나아가 성인영화 관람 허용연령조차 삭제해 버렸다. 입법활동을 위한 국회가 위헌의 소지가 있는 법률을 고치려들기보다는 오히려 「수호」하려 한다는 점에서 놀랍다.

 국회가 정말 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도 모자라 몸만 더 불리려 하고 있다. 내년 국회의 세비는 또 오를 모양이다. 자신들에게 외친 개혁의 고삐는 슬그머니 벗어던진 채 「실속」만 챙기려 든다는 시민단체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국지의 유비는 하비에서 여포를 격파한 다음 임시 수도인 허창을 벗어나 여러 곳을 전전한 끝에 형주의 유표를 만나 신세를 졌다. 여기서 4년여의 세월을 보낸 유비는 어느날 「화장실」에 갔다가 문득 자신의 넓적다리에 살이 오른 것을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유비의 눈물을 본 유표가 사연을 묻자 유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터에 있을 때는 넓적다리에 살이 오르지 않았는데 허송 세월을 보내다 보니 넓적다리에 살이 올랐습니다. 세월은 가는데 이룬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며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을 탓한 것이다.

 국회가 입법활동은 등한시한 채 세월만 보내며 자신의 넓적다리 살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민초들의 다리만이라도 잡지 말아야 할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