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 기획취재부장 jsuh@etnews.co.kr
80년대는 세계적으로 새로운 개념의 가전제품이 마구 쏟아져나오던 시절이다. 이때 발표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마쓰시타의 「트위스트 제빵기」다.
일류 호텔의 제빵사가 구운 것과 같은 맛있는 빵을 집에서도 구울 수 있다는 게 이 제빵기의 특징이었다.
트위스트 제빵기를 내놓기 전 마쓰시타는 오사카연구소에서 많은 자금과 심혈을 기울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시제품마다 번번이 밀가루를 제대로 반죽해내지 못하는 실패를 거듭했다. 또 빵의 속은 설익은 채 겉만 새까맣게 타버리곤 해서 개발자들을 애먹였다. 마쓰시타에서 최고의 기획자와 엔지니어만을 차출해서 구성한 프로젝트팀의 개발 결과라서 실망감은 더했다. 더욱이 제빵기의 반죽과 일류 제빵사의 그것을 X레이로 비교해보기도 했지만 어떤 의미있는 조사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이때 팀원 가운데 한 여성 개발자가 결정적인 안 하나를 내놨다. 오사카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굽기로 소문난 오사카인터내셔널호텔의 수석제빵사에게서 반죽기술을 직접 배워 그것을 제빵기 개발에 적용해보자는 것이었다.
제빵사가 독특한 방법으로 밀가루를 반죽한다는 사실을 안 이 개발자는 호텔을 찾아가 직접 반죽기술을 배웠다. 개발팀과 호텔을 오가기를 1년여, 그는 마침내 제빵사의 반죽기술과 빵의 품질을 기계로 구현해낼 수 있는 제품의 규격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트위스트 밀가루반죽(Twist dough)」기법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이 기법을 채택한 제빵기는 85년 주방용 신제품 매출에서 전세계 1위를 차지했다.
지식창조론의 원조인 노나카 이쿠지로 박사는 트위스트 제빵기 개발과정을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와 「형식지(形式知·Explicit knowledge)」 논리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암묵지는 말이나 글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지식 즉, 제빵사의 반죽 노하우 같은 것이다.
개인성이 강하기 때문에 공식화하기도, 타인에게 전달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심수관 같은 도자기 명인의 암묵지는 수학적 계산이나 기술적 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반대로 형식지는 제품규격이나 과학공식 또는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으며 조직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다. 제빵사에게서 암묵지를 습득하여 이를 트위스트 반죽기법으로 규격화한 것이 형식지다.
암묵지가 형식지로 전환되는 과정은 일종의 「지식의 사회화(Socialized)」인 셈이다. 표현 불가능한 지식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을 찾는 과정인 것이다.
노나카는 개인의 암묵지가 조직의 형식지로 바뀌고 형식지가 다시 개인의 또다른 암묵지를 이끌어내며, 그 암묵지가 다시 형식지로 바뀌는 반복 변환과정을 「나선형 지식창조(Spiral of knowledge)」모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델에 따라 조직(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한다고 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일반 기업에서 암묵지는 조직원 개인의 직관이나 통찰력 같은 것이다. 그리고 직관이나 통찰력을 창조적 모델로 끌어내는 역할과 책임은 유능한 최고경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직관이나 통찰력은 모험(Gamble)의 성격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매우 은유(Metaphor)적이며 유추(Analogy)적이기까지 하다.
노나카는 그래서 나선형 지식창조를 위해서는 은유와 유추에 투자하는 일정한 양의 「의도적 낭비」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1세기 경제를 이끌게 된다는 벤처의 개념도 여기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벤처리스트들을 보면 은유도 없고 유추도 없다. 그래서 여유도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