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우리영화의 명암

모인 문화산업부장 inmo@etnews.co.kr

 세밑의 반가운 소식은 우리 영화의 올 시장점유율이 사상 처음으로 40%를 웃돌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에 비하면 무려 15%포인트가 증가한 것이다. 한때 암울했던 80년대의 영화계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실감날 정도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고 스타의 그늘에서 맴돌던 감독들이 스타 반열에 서는 세상이 됐다. 금융권에서는 좋은 작품·감독에는 마다 않고 큰 돈을 안기고 있다. 시나리오만으로도 담보가 가능한 세상이 돼 버렸다. 정말 변해도 한창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투캅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강우석 감독을 처음 만난 건 지난 92년 초 어느 대기업 영상회의실에서였다. 5척 단구는 아니었지만 키가 작아보였던 그와의 첫 대면은 초췌했지만 총명하고 재주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짧은 수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후 몇개월이 지났나 싶다. 그가 방문했던 대기업과 조인트프로모션으로 영화 한편을 만들어 선보였다. 코미디물 「미스터 맘마」였다. 이 영화는 그 해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면서 우리 영화계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그 이후 「투캅스」와 「마누라 죽이기」 등을 잇따라 제작, 흥행에 성공하는 등 인기감독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 즈음에 만난 사람이 젊은 영화제작자인 유인택씨와 신철씨였다. 아마도 영상산업 육성책 수립을 위한 좌담회 형식의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영화계의 최대 화두는 대기업의 영상사업 참여문제였다.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대기업 참여문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 때 그 두 사람의 주장을 지금의 표현으로 풀어보면 대기업을 영화계의 경쟁상대가 아니라 영화산업을 위한 인프라로 활용하자는 논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주변의 「눈총」을 의식하지 않은 채 대기업과의 연대를 주저하지 않았다. 「101번째 프로포즈」와 「너에게 나를 보낸다」 「구미호」 「은행나무침대」 등은 모두 그들에 의해 탄생한 작품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 영화계에 새 바람이 일었을까. 그리고 우리 관객을 이처럼 불러모을 수 있었을까 싶다.

 세밑의 밝은 소식이 있다면 저 한편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게 마련이다. 대기업들의 잇단 철수와 비디오업계의 한파가 심상찮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대기업들의 철수야 구조조정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그렇다손 치더라도 비디오업계의 경영난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약 10% 정도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수명」이 다하지 않았느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한다.

 우리 영화에 관객을 불러모으는 데 공을 세운 또다른 공로자를 꼽는다면 비디오업계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척박한 영화계를 외면하지 않고 제작비를 지원해 준 곳은 비디오업계였다. 정부에서도 금융권마저 손을 든 영화계에 비디오업계는 묵묵히 지방대리점들의 푼돈을 모아 목돈을 대줘 왔던 것이다. 「미스터 맘마」 「너에게 나를 보낸다」 「구미호」 등의 작품이 이들의 자금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었을까.

 1차적인 책임은 무엇보다 경영합리화를 꾀하지 못한 그들 비디오업계에 있다. 방만한 경영과 낙후된 산업구조를 개편하지 못한 게 원인이다. 입도선매로 판권료를 올려놓고 끝내는 그 고액의 판권료에 눌려 질식상태에 놓여버린 것은 당연히 그들의 몫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사실 그들만큼 사회에서 소외된 산업도 없다. 정부는 무정견과 무관심·무지원 등 「3무」정책으로 일관했고 정부 산하기관들은 줄기차게 견제정책만 내놓았다. 학계의 관심은 거의 무지에 가까웠다는 편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99년 겨울 세밑. 새 밀레니엄시대를 앞둔 이 시점에서 밝은 소식보다는 어둔 그림자가 더 커보이는 까닭은 왜일까. 새 천년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에는 따뜻하고 희망만을 안겨주는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