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밀레니엄의 끝과 시작

윤원창 생활전자부장 wcyoon@etnews.co.kr

 새로운 밀레니엄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구촌 곳곳에서 이를 맞는 요란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고 우리 주위에도 새 천년을 조심스레 설계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전자업체들이라고 다를 게 없다. 디지털 세상의 맹주가 되기 위해 과거 아날로그계의 제왕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뛰고 있다. 기업마다 정보화의 강령이 내걸리고 디지털화의 깃발이 곳곳에 나부낀다.

 「디지털 LG」 「디지털 컨버전스 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삼성」 등 캐치프레이즈만 봐도 하나같이 디지털시대 리더를 꿈꾸는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디지털시대 리더」로 주창이 난무하는 지금 전자업체들은 아날로그 세계의 숱한 부실공사를 묻어두고 디지털만이 살길이라고 뒤도 안돌아보고 돌진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전자업체들의 움직임에는 문제가 없는가.

 디지털시대라고 불리는 21세기는 아날로그시대로 대비되는 20세기와 전혀 다른 세기가 아닌 연장선상에 있다. 또 디지털 전자제품의 본질도 지금까지 개별제품으로 취급돼 왔던 TV·VCR·PC·캠코더·카세트 사이에 음악·영상·데이터 등 정보의 교환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데 있다. 그런 만큼 광속으로 흘러오는 디지털의 급류에 휘말려 전복되지 않으려면 아날로그의 창조성을 디지털로 계승해야만 한다.

 사실 그간 국내 전자업체들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면 위기감이 절로 느껴질 정도다. 고가 제품분야에서 확실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선진국 기업과 저가공세로 세계시장을 무섭게 파고드는 중국·동남아 기업들 사이에 끼어 있다. 품질과 브랜드에서 선진국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고 가격경쟁으로 후발개도국을 따돌리기에는 임금수준이 너무 높아져 세계시장에서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남들보다 뒤늦게 산업화의 길을 걸었던 결과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디지털시대의 도래로 국내 전자업체들에도 기회가 오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대비해 오래 전부터 국내 전자업체들이 개발해온 디지털TV분야는 세계적 기술수준을 갖고 있고 MP3플레이어는 오히려 선진업체들보다 앞서 개발했다.

 후진 아날로그 제품 생산자가 선진 디지털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과거 혁신적인 가전제품들이 나올 때마다 국내 업체들은 기술개발 시점은 늦고 국내 시장이 미성숙해 선진국 업체들의 뒤만 쫓아야 하는 아픔을 겪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디지털시대를 맞는 우리 기업들이 자신감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시대는 설사 생산기반이나 마케팅조직이 없어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지만 그것은 준비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필요하고도 시급한 준비는 예측불가능의 시대에 대한 대응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미국 GE사의 잭 웰치 회장은 21세기는 예측능력보다는 대응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대응능력은 이노베이션(Innovation)의 문화를 체질화함으로써 가능하다. 예측불가능한 인터넷 경제시대에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준비는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신개념의 제품과 서비스를 남보다 앞서 창출하는 것이다.

 지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는 접점시기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접점에 불을 지펴야 한다. 아날로그의 창조력이 디지털시대로 이어지고 이것이 새로운 창조와 진보의 원동력으로 작동하려면 전자업체들이 아날로그의 유연성과 디지털의 속도를 겸비하도록 해야 한다.

 유연하고 창조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혁신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면 그 기업은 예측불가능한 미래의 환경에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시장에서 유리한 사업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은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보여준 우리 기업들의 활약상이 대변해준다.

 새해는 어디까지나 묵은 해에서 잉태하는 것이다. 디지털의 모태는 아날로그다. 이제는 국내 전자업체들이 스스로 아날로그시대의 활동상을 냉엄하게 돌아보고 디지털시대에 맞는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조금이라도 먼저 준비하는 자가 결국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