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21세기를 맞으며

원천린 산업전자부장 crwon@etnews.co.kr

 새 천년의 원년이 되는 2000년 새해 첫날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1999년 12월31일에 지는 해와 2000년 1월1일에 뜨는 해가 다를 것이 없으련만 새해가 주는 의미는 아주 각별하다. 두번 다시 같은 물결을 탈 수 없기 때문에 새해가 주는 의미가 각별한지 모르겠다.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는 화려한 행사가 수놓았다. 날짜변경선에 인접한 남태평양의 이름 모를 섬에서부터 제주도 성산봉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기 위한 각종 이벤트가 열려 지구촌이 온통 축제의 분위기였다.

 설렘과 흥분으로 맞이한 새 천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만물이 유전할 뿐 정지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희랍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20세기 위대한 발명품인 인터넷이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면서 이제와 다른 세계를 열어갈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21세기를 인터넷세기, 디지털세기로 전망하면서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해 왔다. 20세기가 「전쟁의 세기」여서 21세기를 평화와 진보가 공존하는 「희망의 세기」로 여기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는 디지털 기술과 접목된 인터넷이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면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할 것이라는 기대도 담겨 있다.

 세계 석학들은 21세기에는 개인들의 정보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인류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평등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20세기 최대발명품으로 들고 있는 인터넷의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야후 인터넷라이프의 편집장인 스콧 알렉산더는 『아직까지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장비와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장래에는 냉장고가 스스로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는 등 인터넷이 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될 것이다』라고 인터넷의 개념자체가 바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인터넷세기의 문을 여는 새해 첫날, 인류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을 품기보다는 두려움 속에서 떨어야 했다. 컴퓨터 2000년 인식오류(Y2K)문제 때문이었다. 물론 Y2K문제는 그 저변에 상업적인 이익이 절묘하게 깔려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21세기 출발시점에서 불어닥친 Y2K문제는 과학기술을 맹신하고 있는 인류에게 준엄한 경고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과학기술문명이 개화할 21세기가 결코 「희망의 세기」가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21세기가 지난 20세기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21세기의 원년에 일어난 Y2K문제를 겪으면서 우리는 문명이기(文明利器)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을 버려야 한다.

 더구나 인터넷의 확산으로 생겨나는 정보의 불균형이 부의 불균형으로 이어져 빈부격차가 벌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미 유엔개발계획이 내놓은 인간개발보고서에서는 『정보혜택이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배제시켜 부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고 지적된 것처럼 인터넷세기는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21세기 문을 여는 이때, 인터넷확산으로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칼을 누구의 손에 쥐어주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라진다. 강도의 손에 있는 칼은 사람을 해치지만 수술대 앞에선 의사의 손에 있는 칼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칼은 누가 쥐느냐에 따라 인간에게 유익한 도구가 되거나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21세기를 평화와 진보가 공존하는 세기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 앞에 놓인 인터넷이라는 문명이기를 통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인간성 회복」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IMF를 거치면서 「80 대 20의 사회」로 들어선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성 회복만큼 중요한 과제도 없을 듯 싶다.

 「달을 가리키면 저 달을 보아야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 안된다.」 선승으로 조계종 종정까지 지내면서 이 세상에 많은 일화를 남기고 떠나간 성철스님의 법어다. 인터넷세기의 문으로 들어선 지금, 인터넷이라는 껍데기를 벗어 던지면서 인터넷의 본질에 다가가야 할 때다.

 묵은 때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한 선상에서 우리는 인간을 들여다 봐야 한다. 다양한 문명의 이기를 창조했으나 실패로 끝난 20세기를 거울삼아 21세기에는 인터넷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 상생(相生)할 수 있는 희망의 세기를 다 함께 열어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