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디지털시대 유통전략

윤원창 생활전자부장 wcyoon@etnews.co.kr

 하나의 산업이 생성해 번창하려면 최소한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유통산업은 불과 몇년 사이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대변혁을 거쳤다. 선진국에서는 수십년에 걸쳐 이루어낸 신유통을 우리는 불과 몇년 사이에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월마트 등 세계 굴지의 유통업체들에 우리의 시장을 내줘야 하는 대가를 치르기도 했지만 이 정도의 수업료로 현대화된 신유통을 배웠다면 다행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가 아니고 미래다. 앞으로 신유통은 더욱 발달할 것이고 인터넷 확산과 함께 급부상하고 있는 사이버쇼핑몰의 잇따른 등장에 따른 무점포시장의 강세는 상대적으로 전통 유통업체들의 입지를 위축시킬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전자유통체계도 변화의 급류를 타고 있다. 기존 유통채널인 전속 대리점 체제가 급속도로 와해되고 전문점·할인점의 입지가 날로 강화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일본을 들여다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일본에서 연매출 1000억엔 이상인 주요 전문점 25개 가운데 12개 업체가 가전제품 전문점이라고 한다. 이들 일본 가전유통업체 가운데는 두자릿수 이상의 매우 높은 매출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업체도 있다. 가전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처럼 높은 성장을 기록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여러가지 호재가 있지만 무엇보다 철저한 시장분석을 통한 출점전략으로 새로운 상권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게 유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 유통업계의 새 상권 공략전략은 「도미넌트(Dominant)」식 출점과 「크러스터(Cluster)」식 출점 등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도미넌트 출점이란 출점장소를 일정 지역으로 국한해 그곳에 집중적으로 점포를 세워 동종업체에 비해 우위를 확보하는 출점전략이다. 국내 가전유통체계는 모두 엇비슷한 규모에 똑같은 역할을 하는 전속 대리점 구조인 데 비해 일본의 도미넌트식 유통망은 거점 역할을 하는 모점(母店)과 전위대 역할을 하는 자점(子店)으로 나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크러스트 출점은 포도송이처럼 군집을 이루는 출점전략으로 점포간 겹치는 부분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도미넌트와는 개념이 약간 다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일부 대형 유통업체들이 도미넌트식과 크러스터식 출점전략을 병행 실시하고 있다. 주요 도시의 중심지에는 모점 역할을 하는 대형 점포를 두고 중소도시에는 자점을 두어 소규모 상권에서조차도 지배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출점전략은 가전분야뿐만 아니라 컴퓨터나 컴퓨터 부품처럼 규모의 경제가 요구되는 모든 유통분야에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지사가 하던 역할을 모점이 담당함으로써 물류·점포관리 면에서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출점전략도 철저한 시장분석 없이 시행할 경우 오히려 역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한때 급성장하던 국내 특정 유통업체가 몰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현재 일부 업체에서 시작한 유통망 정비도 준비 없는 출점전략에 따른 자기반성의 산물로 여겨진다.

 국토면적이 넓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도미넌트와 크러스터 출점전략이 어쩌면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예에서 보듯 독특한 형태의 유통망 구축전략을 구사해 나름대로 전문점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유통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사이버 쇼핑몰 등 무점포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유점포업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다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이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툴을 만들자는 원칙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유조차 없다. 그렇다고 기존의 습관이나 관념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경쟁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디지털시대에 전통적인 유통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이버 시장과의 차별화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차별화의 핵심은 기존 유통조직과 프로세스, 사람과 기업문화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