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정보통신부장 jspark@etnews.co.kr
지난 80년대 중반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뜻밖에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이라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그의 장점으로 부각된 「모나지 않은 대인관계」는 탁월하지 않은 정치적 역량을 커버해줄 만큼 강력하지 못했다.
당시 경제상황도 그에게 표를 보태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경상수지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는 그에겐 부담이었다.
그는 정부지출 삭감, 공급중시 경제정책, 규제완화 등으로 요약되는 레이거노믹스를 밀어붙였지만 그것은 큰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그런데 재선거를 앞두고 경제지표가 좋아졌다. 특히 실업률이 두드러지게 낮아진 것이다. 그것은 레이건의 지지도를 높여 결국 미국역사에서 몇몇에게만 허용된 대통령 연임이라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게 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당시 실업률이 낮아진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인구분포에서 취업연령에 속한 사람이 뚜렷이 적었던 것이다. 일자리는 일정한데 취업을 원하는 인구가 적었으니 실업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인구분포의 변화는 종종 예상치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최근의 우리나라도 인력구조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바로 직장인의 탈회사 움직임이다.
이동이 많다는 점에서 2∼3년전 외환위기 상황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그때는 명퇴니, 정리해고니 하면서 등을 떠밀려서 나갔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가 붙들어도 떠난다.
그들은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그 속에서 뜻을 펼치기 어려우면 훌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발탁인사에 의한 유인책이나 고액의 연봉도 그들을 붙드는 데는 힘겨운 듯하다. 종전에는 퇴직 자체가 이슈였다면 지금은 「퇴직 이후」에 무게가 실린다. 새로 둥지를 트는 곳은 벤처기업이나 창업이다.
벤처기업에 몸담거나 창업을 하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에서 큰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정부의 각종 규제와 대기업의 벽이 버티고 있다. 그런데도 기득권을 버리고 황무지와 다름없는 곳에서 노다지를 캐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점이다.
그들 중에서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다는 것을 대부분 안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극히 낮은 확률에 속하고 싶어하는 점 같다. 빌 게이츠나 손정의와 같은 IT분야의 드림을 실현해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소박하게 자기만의 일을 해보고 싶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희망을 주고 있는 회사는 그들에겐 더이상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변화가 더딘 조직에서 희망을 보장받는 것은 이젠 어렵다고 그들은 느끼고 있다.
그들의 「믿음」이 옳든 그르든, 「희망」이 성취되건 아니건은 지금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그들은 변화하는 세상의 맨앞에 서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에서조차 평생직장 신드롬은 조만간 전설로 남을 것 같다. 미국의 사회학자 화이트가 말한 「조직인」은 이제 멸종위기에 처했다.
우리 사회 내부의 첨단업종인 정보통신분야에서 일어나는 이같은 새로운 바람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이 불어닥치기 시작한 바람에 의해 깊은 잠을 깨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고 창업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현실론을 펴기도 한다. 또 경영자는 기업조직의 낡은 틀을 깨고 새 시대에 걸맞도록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언제나 대증요법은 유용한 수단이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그들이 무엇에 절망하고 또 무엇에 마음을 사로잡히는지 편견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 도도히 밀려오는 변화의 본질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이 사회가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