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IMT2000 표준 논란

박재성 정보통신부장 jspark@etnews.co.kr

꽃 재배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꽃 경매 방식은 독특하다. 경매인은 매우 높은 가격에서 입찰을 시작해 응찰자가 없으면 점차 가격을 낮춘다. 그러다가 가장 먼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낙찰된다.

같은 유럽이지만 영국은 그 반대다. 경매인은 가장 낮은 가격에서부터 호가를 시작, 점차 가격을 높여 부르며 마지막 입찰자가 남았을 때 경매는 끝난다.

영국이 최근 이러한 방식으로 차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사업권 경매를 실시, TIW를 비롯한 보다폰에어터치 등 5개사가 사업권을 획득했다. 이번 경매는 그 자체로서는 시장원리에도 맞고 투명성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전세계가 「잘한 처사는 아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외신은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다. 영국내에서도 사업권을 획득한 보다폰에어터치와 그 산하의 오렌지에 대해 입찰금액 납입기한을 늦춰줘 편의를 제공했다는 사업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특히 영국 정부가 이번 경매를 통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7배가 넘는 224억7000만파운드(약 40조원)의 수익을 올린데 대해서도 말이 많다. 독일이나 홍콩 등도 영국이 많은 수익을 올림에 따라 벌써 예상 수익을 올려잡고 있으며 이에 대해 야당은 『국민의 부담이 커질 것이다』며 공격하고 있다. 심지어 유럽연합(EU)조차도 영국이 과열경쟁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 사업자 선정은커녕 선정방식도 정하지 못한 우리나라도 요즘 IMT2000 때문에 시끌시끌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퀄컴이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일본을 비롯한 한국과 중국 등에 동기 방식을 채택해 달라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으며 단지 일본에서는 일본경제신문이 며칠 전 「미국 퀄컴이 일본에서 IMT2000사업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이 일본과 미국의 통신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부가 미국 퀄컴이 우리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부분에 대해 즉각 『사실 무근이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가 표준결정 문제에 말이 많은 것은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우리가 동기식을 채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런데 그 경우 유럽을 비롯한 세계 100여 개국이 비동기식을 채택하고 있어 호환성(로밍)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또 막대한 수출시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기·비동기 복수 표준을 택하자니 중복 투자 문제도 걸린다.

표준화가 이처럼 문제가 되는 것은 당초 단일 표준을 마련하려 했던 국제통신연합(ITU)이 각국의 이해를 조정하지 못하고 복수표준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단지 ITU는 복수 표준을 인정하되 각국이 국제통화(로밍)를 하는데 있어서 호환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도록 권고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표준화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논란이 크게 일고 있는 것은 서비스 사업자나 단말기 업체들의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대체로 선발주자인 SK텔레콤과 삼성전자는 동기식을, 후발주자인 PCS 3사나 기간통신사업자, LG정보통신 등 단말기 업체는 복수표준을 선호하고 있는 입장이다.

어쨌든 우리는 연말까지 IMT200사업자를 선정하기 전에 선정방식과 사업자 수를 먼저 결정해야 하며 그에 앞서 표준을 정해야 한다. 이미 대부분의 나라들이 표준을 결정했다.

우리의 표준 결정이 늦어지면 경쟁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 업계나 학계는 표준 결정에 대해서 어떤 입장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내놓을 수 있다. 정부도 이제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만 말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그것을 쉬쉬하다가 막후에서 결정하기보다는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어 조정과 합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뒤탈이 없다. 그것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업자의 이해를 떠나 국가나 산업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는 경제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