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제부터 시작이다...모인 문화산업부장

LA 컨벤션센터는 로스앤젤레스시가 자랑하는 곳중 하나다. 전시공간이 무려 2만5000여평에 달하고 64개의 크고 작은 상담실,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는 이곳은 연중무휴로 전시회가 열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LA 도심과 전시장을 30분 안에 오갈 수 있고 다른 지역 관람객들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이용해 이곳 전시장까지 논스톱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6000여대에 이르는 주차공간시설과 전시장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그 때문에 LA 컨벤션센터에는 국제전시회가 끊이질 않는다.

이곳 LA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전시회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행사는 최근 막을 내린 E3쇼다. 매년 5월 개최되는 E3쇼는 다양한 콘퍼런스와 전시회의 화려함으로 세계 각국 게임업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선보인 제품이 한해의 세계 게임산업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E3쇼는 게임 경연장에 가깝다.

올해 E3쇼의 가장 큰 특징은 게임과 에듀테인먼트 타이틀이 대거 출품됐다는 점이다. 또 시에라의 「홈월드-카타 클리즘」, 하스브로의 「프로거 2」, 세가의 「소닉 어드벤처」, 웨스트우드의 「레드 얼랏」 등은 완성도와 시장성으로 높은 관심을 모았다. 예상대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와 세가의 드림캐스트 등 비디오 게임기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래서인지 사우스홀·웨스트홀·캔시아홀 등 3개관으로 나뉘어 선보인 전시장은 매일 같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우스홀과 웨스트홀은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은 전시관이다. 이른바 게임 메이저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영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웨스트홀은 세계적인 게임업체인 소니와 세가·닌텐도가, 사우스홀은 임포그램과 하바스가 나란히 자리했다.

반면 캔시아홀은 인디펜던트사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위치한 곳도 지하다. 그래서 웨스트홀과 사우스홀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주최측은 마치 수면위로 떠올라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에서 지하 전시관을 인디펜던트사들에 임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전시관은 캔시아홀에 있었다. 20여개 업체가 공동으로 마련한 한국관은 그러나 예전의 위상과 다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각국 바이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폐막을 앞둔 하루전에는 자리가 비좁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콧대 높기로 소문난 하바스와 세가·인포그램 관계자들이 잇따라 한국관을 방문한 것도 올해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 게임산업을 바라보는 선진 외국기업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상당수준에 올라서 있다는 것이다.

E3 전시회에 앞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게임종합지원센터는 홍콩과 로스앤젤레스·워싱턴 등 3개 지역에서 게임로드쇼를 개최했다. 사실 주최측은 불안과 초조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외국기업들의 반응을 종잡을 수 없었고 시큰둥하게 나올 경우 개최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드쇼의 결과는 예상밖의 성황이었다. 홍콩의 대표적인 기업인 HSBC와 뉴브리지캐피털·JP모건 등이 한국게임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나섰고 버추얼테크놀로지측에서는 전략적 제휴를 타진해 오기도 했다. 교포들의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애정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주최측은 이 행사를 통해 약 4500만달러에 달하는 투자상담 성과를 얻어냈다.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에 세계 각국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형이하학」적 게임만 제작할 줄 알았던 한국 게임업체들의 하루가 다른 모습에 당황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전략시뮬레시션 게임 제작과 기획력에 대해 놀라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게임 메이저의 한 관계자는 『향후 1∼2년 후면 일부 장르의 경우 한국이 거의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게임산업이 하루아침에 용이 돼 비상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의 이같은 반응과 평가는 어쩌면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랄 수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그들로부터 심한 견제와 공세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다.

전열을 가다듬고 잔비가 옷을 적시듯 한계단씩 올라서는 지혜를 모아야겠다. 그리하여 캔시아홀에서 벗어나 미·일 등 선진 각국과 나란히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사우스홀과 웨스트홀로 당당히 나서자. 그날의 서막은 순전히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 첫술에 자만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